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동고동락을 함께한 비데가 고장이 났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올해로 10년이 넘었으니,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함께해 준 셈입니다. 10년이 지나는 동안 아들과 딸이 태어나 네 식구를 앉혀 주느라 많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가전제품 수명이 10년 정도라는 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진리인가 봅니다.
비데 사용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고장이 나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난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정든 친구를 대신하여 빠르게 새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주말이라 상품 배송은 가능했지만, 설치 기사님의 도움은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상품을 주문하고 돌아오는 주중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말 이틀을 비데 친구 없이 보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손재주가 있는 듯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잘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만들기는 형이 잘했고, 그런 형이 부러웠습니다. 저는 기껏해야 단순한 장난감 정도 조립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만들기를 잘 못한다는 것, 그래서 기계나 장비를 잘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커서 애매하고 사소한 이슈가 되었습니다.
먼저 회사가 들어갔는데 컴퓨터라는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8비트 컴퓨터를 다룬 경험은 있지만, 고작 2차원적인 게임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대학생 때도 메일이나 채팅 용도로 사용했지, 업무적으로 문서를 만들거나 그 외 다른 용도로 컴퓨터를 다루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로 하는 모든 일이 새로웠고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일을 해야 했기에 선배들에게 혹독하게 훈련받았습니다. 덕분에 점점 사람 구실하는 수준으로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결혼을 했는데, 이제는 다루어야 하는 장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모든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가구 등 모든 살림을 만지고 다듬고 해야 했습니다. 벽에 못을 박는 일이나 변기가 막혔을 때 뚫어야 하는 일도 해야 했습니다. 결혼 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했기에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하지 않았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심정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나라라도 구해야 하는 독립투사, 전쟁터 군인과 같이 비장한 각오로 살림을 다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전등을 갈아 끼워야 하는 일, 싱크대에서 물이 바닥으로 새는 정체 모를 것을 막는 일, 아이들이 벽에 낙서하면 지우는 일 등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크고 작은 사건과 사고를 반드시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든 우당탕탕 임무를 완수해 냈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을 처리할 때 느낀 점은, 처음 상황을 마주한 순간에 그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되고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전해 보면 불가능한 일은 없었습니다. 때로는 설명서를 보고, 때로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방법을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두려움이 처음 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을 방해하여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뿐, 제 안에 충분히 해낼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빠르게 해치우려고 절차를 무시하고 힘으로 일을 대하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얼추 느낌으로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덤벼들면 뜻대로 잘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커튼을 빨고 다시 원상태로 천장에 달면서 고리를 마구잡이로 끼우면 순서가 뒤엉켜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 정확하게 순서를 파악하고 차분하게 하나씩 고리를 맞춰서 달면 오히려 서두른 때보다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 새 비데를 설치하기 위해 헌 비데를 제거하는 일에서도 다시 깨달았습니다. 고정 나사를 빼야 했는데, 잘 빠지지 않아서 힘을 쓰느라 30분 이상 소요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정 나사는 힘으로 잡아 빼는 것이 아니라 변기 밑에 고정 장치를 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3초면 할 수 있었던 일을 앞뒤 가리지 않고 빨리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600백 배나 더 올래 걸렸던 것입니다. (계산 맞나요?)
여러분도 처음 도전하는 일이 있나요? 그 일이 어렵게 느껴지나요? 제가 장담합니다. 여러분은 그 일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숨겨진 능력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만,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 선배들이 해왔던 방식을 찾아보고 차분하게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떤 일도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원리와 논리만 알면 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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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5일 오후 1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