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종종 듣는데 대부분 직설적이라는 말을 한다. 한번도 스스로 그렇게 느껴본적은 없지만 왜 그렇게 글을 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글을 처음 제대로 써본건 대학생이 되었을 때다. 어느 누구나 그렇듯 한학기는 수사학, 다른 한학기는 문학 수업을 들었다. 수사학에서는 수사학의 기초와 논쟁법을 배웠고 첫 과제는 polemic 쓰기였다. 이때 나름대로의 나의 재능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냥 생각한대로 쓰고 본 그대로 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것들을 쓸 때 묘하게 쾌감이 느껴졌다. 나머지 과제는 되게 시시했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서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대충 자료 조사하고 논리에 맞게 주장을 하면 됬다. 다년간 루리웹 키워로 다져진 나에게는 이런 과제는 기실 똥싸는 것 만큼 쉬웠다. 문제는 두 번째 학기에 들은 문학 수업이었다. 내가 봤을 땐 교수는 헤밍웨이 광팬이었다. 글쓰기 기초로 몇 가지 팁을 주었는데 짧게 쓰고 직설적으로 말하라는 것이었다. 여자 꼬실 때도 짧고 직설적인게 최고라며 시덥잖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 외 몇몇 유용한 팁이 있었는데 지금도 가끔 사용하고 굉장히 효과적이다. 아무튼 과제는 세개였다. 첫 번째 과제는 흔해빠진 에쎄이 쓰기였다. 나는 클리셰흔 사랑을 주제로 글을 썼다. 젊은 날의 사랑은 진짜 사랑 같지만 그저 불타는 나뭇가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늙어서의 사랑은 정적이지만 그 깊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활활 타는 20대의 연애는 레이먼드 카버의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의 죽기 직전 노부부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머지 두 과제는 단편소설을 쓰고 내가 쓴 소설에 대한 비평글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실에서 수업을 하다 발작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의 기억과 한국이라는 특이한 아시아 변방국의 경험을 살려 글을 썼다. 비평이야 나에게는 루리웹 시절 키워 만큼 쉬웠기 때문에 그냥 대충 썼다. 과제 결과를 돌려 받는 날 교수가 나를 따로 불러 내가 영어를 못해서 문학은 힘들 것 같고 인문학 쪽으로 박사를 가면 좋을 것 같다는 추천을 했다. 빌어먹을 교수놈의 감언이설에 현혹될 뻔했지만 다행이 정신을 차리고 수학이라는 근본있는 학문을 복수전공으로 신청했다. 이게 나의 글쓰기 학습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때 만든 습관을 아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게 단순히 훈련으로 학습된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희망 넘치는 책은 첫 단원만 읽고 쓰레기통에 버리지만 나심 탈렙의 글에서는 쾌감을 느낀다. 저열한 희망 전도사스러운 글을 읽으면 토할것 같지만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으면 심장이 뛴다. 결국 이건 그냥 내가 가진 습성이다. 최근에 든 생각이지만 수사학을 잘해봐야 별 쓸모가 없다. 아마 브런치에서 공유 많이 받는 용도 외엔 아예 쓸모가 없는 것 같다. 여자를 꼬실 때도 쓸모가 없고 회사 승진에도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도움 되는건 수필 쓰기 같은거다. 그래서 수필을 배우고자 여름에 숨고에 수필 고수 찾기를 신청했다. 몇 명 선생님과 대화를 했고 내가 쓴 글들을 보여주니 다들 코칭 하기를 머뭇거렸다. 아마 수필을 쓰기에는 적절한 문체가 아닌듯 싶었다. 그래도 후에 은퇴하고 책이라도 하나 써보고 싶어서 틈틈이 준비를 하고 있다. 매일 버스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라도 글을 쓰고 메모를 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30년 정도 하면 그래도 1,000권 정도는 팔 수 있는 작가쯤은 되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건 요즘 팔리는 글은 흥미로운 글이라기 보단 역시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쓰는 긍정적인 글이다.

글쓰기가 막막한 당신에게 권하는 작법서 2권

서울신문

글쓰기가 막막한 당신에게 권하는 작법서 2권

2020년 12월 20일 오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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