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콘텐츠 제작사들 사이에서 일개 개인 창작자가 살아남는 법> 1. 할리우드에서는 흥행 성적이 어떠하든 간에 영화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전통이 있다. 2. 하지만 나는 내가 만든 3백 편의 이상한 영화 중 280편에서 이익을 남겼다. 내 영화들은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출품되었고,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런던의 국립 영화 극장, 뉴욕의 현대 미술관에서 내 영화의 회고전을 열었다. 3. 나는 그곳에서 회고전을 열어준 최연소 감독이었다. 4. 영화업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겪었다. (초기) 내 영화들이 주로 상영되었던 드라이브인 극장들은 하나둘씩 쇼핑몰이나 도심에서 생겨난 멀티플렉스에 밀려 없어졌다. 5. 70년에 들어서는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흥행용 영화나 B급 영화 시장에 침범해 들어왔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배우들을 기용하고 특수 효과에 엄청난 돈을 들여서 영화를 만들었다. 6. (결국) 메이저 영화에 밀린 저예산 영화들은 결국, 그때 막 열리기 시작한 공중파TV, 케이블TV, 홈 비디오 시장으로 부가 판권 시장을 넓혀갈 수밖에 없었다. 7. 이런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도 나와 나의 회사는 변신을 거듭했고, 여전히 미국 내의 독립 제작 배급사 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8. 1960년대의 반문화적 교육을 받은 영화 작가들은 내가 ‘무법자'로 악명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고집스러운 작가 기업인으로 보고 있었다. 9. (그렇게) 그들은 나에게서 영화 제작 준비 과정의 중요성, 사전 조명, 돌리 운용법, 편집을 의식한 촬영, 구도, 신속한 현장 진행 등을 배웠고, 나도 그들에게 마케팅, 광고 기법, 배급 실무 등의 기초를 가르쳤다. ‘코먼 문화생’이라는 경력은 메이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10. 코먼 학교 졸업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그 당시 나는 영화 연출이 지겨워져서 ‘뉴월드 영화'를 설립했는데, 뉴 월드는 인디 영화 작가들의 대안학교가 되어 버렸다. 11. 뉴 월드 졸업생들은 지금 할리우드에서 실력 있는 감독,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마틴 스콜세지, 조너선 드미, 론 하워드, 조 단테, 조너선 카플란, 앨런 아르쿠쉬, 존 세일즈, 제임스 카메론, 존 데이비슨, 바바라 보일 등이 코먼 학교 졸업생들이다. 12. 인디 영화사가 거의 없던 1950년대 초, 스튜디오 시스템이 지배하던 업계를 뚫고 들어가기 얼마나 어려웠는지 어찌 내가 잊을 수 있을까. 13. (하지만) 내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혼자 영화를 만들어 온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14. 개인에게 오랫동안 힘을 실어주지 않고, 조직만 키워 번성하는 게 바로 스튜디오들이다. 15. 나는 조직을 작게 하고, 직급 구분이 거의 없게끔 회사를 운영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헌신하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관료화되지 않는다. 16. 직급이나 직위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모든 직원들이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 자리다툼을 하는 자에게 내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17. 내 영화 <아틀라스>에서 아틀라스가 프락시메데스에게 묻는다. “이 적은 병력을 가지고 어떻게 저 거대한 성을 공략하시렵니까?” 18. 프락시메데스는 이렇게 답한다. “소수 정예의 헌신적이고 잘 훈련된 병사들은 아무리 그 수가 많다고 한들 오합지졸을 물리칠 수 있소. 그게 나의 전쟁 신조요" 19. 그건 나의 영화 제작 신조이기도 하다. - 로저 코먼,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중

2021년 1월 28일 오전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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