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문제가 고통스러울 때 되뇌이면 좋은 상상>
독일 태생의 수학자 알렉산더 그로텐디크(1928~2014·1966년 필즈상 수상)의 유명한 글을 빌려 답하고 싶다. 그로텐디크는 수학에서의 진보가 일어나는 이미지를 다음처럼 은유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을 때 대상 주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만 같지만 저 멀리서 바다로부터 서서히 물이 차올라 조수간만이 달라져 어느덧 대상 주위를 물이 감싸 결국 대상의 껍질을 스스로 녹인다. 수학의 그렇게 진보를 이룬다.' 그로텐디크의 말처럼, 단단한 껍질의 호두를 한 천재가 망치로 깨부수는 것이 과거 수학이었다면 현대수학은 집단지성으로 껍질을 녹인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종이에 옮기는 일>
시와 수학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첫째,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종이 위에 고체화 시킨다. 둘째, 읽거나 읽히기가 쉽지 않다. 셋째, 그래서 읽는 사람이 없다(웃음). 수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부러운 이유는 직접적이고 또 누구에게나 소통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행위로서 시를 쓰거나 수학 증명을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내가 뭔가를 느끼고 본 것을 기록해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지 않을까. 수학자도 음악가도 종이에 인식을 적지만 악보와 달리 수학 증명은 연주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