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展 ‘Dreaming of Hockney’에 다녀왔다. 80세가 훌쩍 넘은 작가는 아이패드와 뉴미디어를 활용한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디지털 아트인가, 출력 후 액자에 넣었으니 아날로그인가?
요즘은 업종을 막론하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든 ‘디지털’을 피할 수 없다. ‘왜 디지털이고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는 질문을 반복하다 보니 이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최근 신사업 아이디어 발굴 워크숍을 진행하며 세대 별로 팀을 구성했다. 시니어 그룹의 아이디어에는 메타버스며 최신 기술 트렌드가 여럿 등장한 반면, Z세대 팀의 어이디어에는 디지털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디지털 네이티브들만 모였는데 어찌 가상현실 같은 아이디어가 없느냐는 질문에 “메타버스든 AR이든, 뭘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쓰면 되죠. 그건 툴이지 목표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란 이런 것이군’이라는 깨달음을 만났다.
주변에서 디지털 피로감을 호소하며 ‘인간미 없고 효율성만 추구하는 것’, ‘잘 모르면 스트레스 받고 말만 들어도 현기증 나는 것’이라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친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으면 디지털, 노트와 펜을 들고 있으면 아날로그라 하는 1차원적인 해석에 머무르기도 한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공간에 방문하기 전에 내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현장에서는 번거로운 과정을 생략하고 최적화된 몰입된 경험을 했다면 이것은 디지털 경험인가 아닌가.
LED 패널과 미래적인 인터페이스가 압도적인 공간이지만 새롭게 업데이트되지 않은 콘텐츠를 매번 똑같이 만난다면 이것은 디지털인가 아닌가.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는 것이 디지털 경험이 아니다. 화면 안에 갇힌 것이 아니라 확장된 세계로 연결해 주고 사용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번거롭고 장황하지 않게 최적의 루트로 안내하는 것, 바로 ‘심플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디지털이다. 여기에서 ‘심플’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사용자와 대상 간의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의미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툴만 달라졌을 뿐 작품에 담겨진 이야기와 유쾌하고 즐거운 톤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는 디지털을 더 적극적인 창작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자 전통적인 회화 거장이 갖는 통념적 이미지에 도전하는 메시지로 활용했다.
결국, 어떤 일의 목적과 목표에 따라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가 중요하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대척점에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주변을 휙 둘러보고 ‘디지털’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아주 작은 변화를 위해 사용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일상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