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인간은 변하는가?
Naver
첫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환경주의자가 된다. 최선의 마음으로 양육하고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면,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아이를 키운다. 그러다가 둘째가 태어나면 부모는 본성주의자로 바뀐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탄식하면서, 사람의 본성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신념을 굳힌다. 어느 신념이 맞을까? 인간은 바뀌는가? 인간은 바뀔 수 있는가? 개인적 문제이든 사회적 문제이든, 삶의 중요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개인의 행동 변화가 필수적이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지구적 문제도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그런데 왜 어떤 누군가에게는 ‘인간은 변한다’는 사실이 자명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명한 것일까? 참고 기다리며 바뀌기를 고대했던, 그러나 끝내 기대를 저버린 누군가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아니면 외동을 키우느냐, 둘 이상의 자녀를 키우느냐의 차이일까? 그것도 아니면 사회과학을 전공했느냐, 자연과학을 전공했느냐의 차이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변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모호하다는데 있다. 여기에는 어떤 기준으로 변화 여부를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 어느 정도 변해야 변했다고 할 것인가? 사울이 바울로 변한 극적인 경우만을 변했다고 할 것인가? 언뜻 생각하면 변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변화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기준 중 하나로 변화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변화 가능성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1️⃣개인 내 변동이 변화인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기준은 한 개인의 특성의 절댓값이 변하는지의 여부다. 예를 들어, A의 외향성이 20대에는 80점이었는데, 40대에는 40점이 되었다면 그는 변한 것이다. 2️⃣개인 차이의 변동이 변화인가? 이 기준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비교하는 상황에 흔히 사용된다. 만일 A의 외향성은 80점에서 40점으로 바뀌었지만, B의 외향성은 30점으로 계속 동일하다고 치자. 위의 기준(1)을 따르면 A는 변했고 B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두 사람 사이의 외향성 ‘순위’다. A가 아무리 내성적으로 변했더라도 A가 B보다 외향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개인차’ 또는 ‘순위’에 근거한 이 기준을 쓰면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예나 지금이나 모범적이었던 친구는 여전히 모범적이고, 활발했던 친구는 여전히 활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3️⃣외부 사건이나 환경에 의한 변동이 변화인가?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크게 보는 사람들은 기준(3)을 주로 사용한다. 이 기준은 거대한 사회적 변동이나 압도적인 개인적 사건을 겪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전쟁, 대규모 전염병, 산업혁명 등의 거대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 혹은 어린 시절에 가난과 학대 같은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보는 것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과거의 젊은이들과 동일한 태도와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의 여성이 과거의 여성과 행동 특성이 동일한가? 이 기준에 따르면 인간의 변화 가능성은 매우 자명하다. ⏩‘인간은 변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처럼 다양한 기준에 의해 판단되기에, 어떤 기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한편으로는 ‘요즘 것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세대 차이를 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변하는가?’라는 논쟁을 할 때는, 어떤 기준에서의 변화를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변화의 기준과 의미를 명확하게 정하고 나면, 인간의 변화 가능성은 우리가 믿어왔던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올 것이다.
2021년 10월 25일 오후 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