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트워크, 복귀가 아니라 진화다》 팬데믹이 끝나고 있다. 정확히는 인간의 적응이 끝나고 있다. 출퇴근이 진리이던 시대가 크게 한 방을 먹었고 물리적인 출퇴근과 사무실에 대한 성찰이 있었다. 유럽은 다시 마스크를 벗고, 사람들이 만난다. 매일 확진자 수를 발표하며 일희일비하지도 않는다. 사무실이 문을 열었고, 출퇴근이 다시 시작됐다. 어떤 사무실은 이전의 평면 구조를 뒤집기도 했다. 이렇게 코로나 이전의 모습이 생겨나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진실은, 출퇴근과 리모트워크 사이에서 균형감을 찾고 있는 것이다. 출퇴근에 대해 반대하던 이들은 팬데믹 기간을 통해 사무실 업무의 의미를 알게 됐고, 재택에 반대하던 이들은 다시 시작된 출퇴근을 통해 원격업무의 효율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게 있어 무엇이 최적인지를 찾아가는 과정 - 그것은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화다. 나는 그동안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 중요한 것은 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전제 때문이었다. 실제로 학창시절 1등은 늘 한 자리었고, 회사의 부장 승진자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물리적인 사고 안에서만 진실이란 걸,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됐다. 내가 3차원까지만 지각한다고 해서, 내가 사는 우주가 3차원은 아니라는 것도. 출퇴근에 힘들어하는 사람이나 재택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나 지금 우리가 겪는 시간은 선물이다. 원하지 않는 상황은, 내가 그 반대의 것을 얼마나 원하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나는 언제 행복한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가장 잘 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느낌이라는 확실한 언어, 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주 6일 출근에서 펜데믹, 위드코로나까지 경험하면서 내 자신이 원하는 걸 더 정확히 알게 됐다. 나는 자연 속에서 여유있게 일하는 것이 좋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의 출근이 좋다. 그 마저도 형식적이지 않은, 사무실은 있되 누구도 출근의 의무가 없는 방식이 좋다. 원하면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서 밤을 샐 수도 있지만, 필요하지 않다면 두세 달을 나가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 나에게 맞다. 나는 인간의 선함을 믿으며, 누구나 원하면 이런 방식으로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런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 자신도, 그에 필요한 디지털 기술도과 그걸 실천할 용기가 있다. 더 나아가 예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협업하고, 학습하고, 목적을 달성해 나갈 인사이트와 전략이 있다. 내가 지금 스마트워크 디렉터가 되어 있는 건 그래서다. 다른 사람들에겐 어려운 새로운 일과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건 내가 본능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자, 이번 삶에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각자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 산다. 삶은 ‘생존’하기 위한 전쟁터가 아니다. 삶은 ‘즐기기’ 위한 놀이터고 즐거움의 장이다. 사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그 물리적인 준비가 다 됐기에 물리적인 형태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기본소득보다 더 확실한 삶을 믿고 즐기자.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삶은, 신은 우리의 노력을 불모로 유치한 거래를 하지 않음을 믿자. _ 아무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길래 생각이 없다가 낮에 댄스 수업을 마치고는 더워서 들어가 봤다. 처음엔 차가웠지만, 몇 미터 수영하니 금세 몸이 데워졌다. 우리를 보고 몇몇 사람이 합류했다. 덕분에 한 30분 즐겁게 놀다 왔다.
2021년 11월 11일 오전 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