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우리의 위치에서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역할에 ‘책임’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는 늘 ‘갈등’이 있다. 더 많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더 적은 일을 하기 위해, 그렇게 더 적은 Input을 주고, 더 많은 output을 가져가기 위해 모두 고군분투 중이다.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더 많은 역할을 맡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손해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손해’라는 것을 ‘투자’라고 바꿔 생각하면,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좋은 것(?)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싶다’고 한다. 힘든 일, 어려운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연봉만 계속 높이고 싶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필자도 그랬다. 책임 이상의 역할을 맡아달라고 제의를 받으면 거부하곤 했다. 심지어 조직과 리더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모르는 체 했다. 그들의 의도대로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그저 어떤 ‘기능적 움직임’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때를 후회하고 있다. 왜? 그로 인해 내 경험의 한 쪽이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선 조직이 공동으로 짊어지고 있는 ‘책임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살피고, 함께 일하는 이들의 일이 공동의 목적과 목표에 맞닿을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한다. 그것이 내 책임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에는 함께 하는 이들의 기대감이 담겨 있다.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때로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맞춰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타인의 기대치에 맞춰 일을 하되, 그 기대감의 실체를 확인해가면서 명시된 성장 방향과 단계 등에 맞게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면 된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공통적 요소를 찾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사고를 단순히 직무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늘 조정하는 여유를 갖는 것을 말한다. 그것까지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 당장은 리더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리더가 될 수 있는 나름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스킬과 테크닉의 영역이 아니다. 일을 바라보는 철학과 이를 발산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나를 위해 일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위해 일을 하고, 때로는 조직의 일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관점의 ‘정도의 차이’에서 생기는 ‘빈정 상하는 감정’을 최소화 할 수 있다. 5년이 넘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일의 비즈니스적 가치와 의미를 일깨우는 노력을 하면서 얻게 된 인사이트 중에 하나는 기능(역할) 중심적으로 업무를 하는 이들과 책임 중심으로 역할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이들 중에 누가 더 오래 살아남으며, 누가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쌓는지에 대해서다. 답은 의외로 쉽다. 오래 살아남는 것으로만 따지면, 전자이다. 이들은 신기한 만큼 조직이 딱 표면상으로 원하는 만큼의 역할만을 하려고 한다. 그걸로 자신의 밥값(Responsibility)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쉽사리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쌓는 이들은 후자이다. 그들은 실제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걸로 더 많은 전문성을 얻는다. 그들은 스스로 조직과 자신의 커리어를 동일시하며 무한에 가까운 책임(Accountability)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심지어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거나, 잘하고 싶은 일의 영역을 점차 확장하고 깊게 가져가려는 노력도 함께 해간다. 역할과 책임에는 관계가 숨겨져 있다. 회사와 나의 관계 속에 내 역할과 책임이 담겨있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가진 기대가 늘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이게 더 이상 나를 억누르지 않도록, 함께 일하는 이들과 재조정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그 제의를 거절하거나, 슬슬 피하기만 하는 조직이라면 떠나도 좋다. 결국, 가장 중요하고 꼭 해결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 ‘조직적으로 회피’하겠다는 뜻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조직에는 희망이 없다.

[김영학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역할보다 책임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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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학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역할보다 책임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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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9일 오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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