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의 소득 불균형화 - 블리자드, 그리고 핀란드 이야기 조금]
오늘은 바다 건너 미국의 이야기로부터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회사 블리자드(Blizzard)의 소득 불균형 문제가 최근 온라인을 달구고 있습니다. 미국 게임 종사자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죠. 한국과 핀란드는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 게임 노동을 대변해주는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거든요.
1. 게임 노동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긴 노동 시간, 잦은 야근, 만연한 열정 페이에 대한 불만이 꾸준히 축적되어 왔지요. 미국의 경우, 초대형 게임회사들이 (흔히 "AAA 게임회사"라고 불립니다)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면서도 틈만 나면 구조조정을 하는 풍조가 만연해있습니다. 책임직/고위직만 남고 나머지는 1년이 멀다 하고 물갈이가 되는 거죠. 빨리 고용되고, 빨리 잘리고, 빨리 포트폴리오를 관리 잘해서, 빨리 이직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물론, 이를 두고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게임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2. 최근 블리자드 직원들이 연봉이 너무 낮아 일상생활을 영유할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일부는 하루 세끼 먹을 돈도 모자란 것으로 나타났죠. 반면 CEO와 경영진들은 수십억 단위의 연봉과 보너스를 두둑이 챙겼습니다. 게임업계는 평소 친한 사이더라도 결코 연봉을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는데요 (연봉을 공개하면 인사과정에 불이익이 오기도 하거든요), 이번에는 블리자드 본사 직원들이 '까려면 까!'라는 마음 가짐(?)으로 연봉 공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불만이 누적되어 있던 겁니다.
3. 아직 미국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을 대변하는 단체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매년 이 문제가 반복됩니다. 이번 블리자드의 소득 불균형 이슈도 별다른 변화 없이 또 시간이 지나면 묻힐 것 같고요. 마땅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거든요 ㅠㅠ 미국에서는 '게임 노조'를 설립하자는 말이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성은 없어 보입니다. 올해 초 GDC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54% '연대해야 한다'라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실제로 연대가 이루어질 것 같다'라고 희망적으로 답한 사람은 23%에 불과했습니다. ㅠ
4. 한국 게임업계도 잦은 야근과 이직률, 갑질 소득불균형이 오랫동안 문제로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조금 희망도 보입니다. 넥슨(Nexon) 노조를 시작으로 몇 년 전 부터 카카오, 스마일게이트 등의 회사들에서 노동자 연대가 생겨났습니다. 물론 아직 전체 게임업계를 모두 대변하기에는 아직 그 규모가 작고 게임노동 관련된 이해관계도 복잡해 문제가 해결되기 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해보입니다.
5. 핀란드의 경우, 노조가 법인별이 아니라 직군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인구의 약 70%가량이 노조에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노동자의 권리'를 중시하는 풍조가 있죠. (사회주의 국가의 위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이, 게임이 무슨 노동이냐'라는 인식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으아닛 슈퍼셀의 나라 + 사회주의 나라 핀란드에 게임 노조가 없다니!!'라는 자존심(?) 문제가 제기되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2018년 드디어 핀란드에도 게임 노조가 처음 생겼습니다. 지금 핀란드 게임업계는 주 37.5 시간 근무가 통상적으로 인식됩니다. 그 외 추가로 일하는 것이 있으면 수당을 지급하고, 그게 아니면 사람을 더 뽑아서 가급적 근무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물론 이 동네에도 야근과 크런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핀란드 게임업계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바다 건너 미국 게임업계 종사자 분들에게도...(지금은 꿈과 희망도 없지만...) 언젠가 현실이 나아질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여담) 저는 한때 한국과 미국의 게임회사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핀란드의 대학에서 게임업계와 노동에 대한 박사과정을 시작한 참입니다. 관심분야이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