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떤 것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 안의 초자아가 극도로 엄격한 이유가 어렸을 때 성장과정에서 가정환경으로 인해 생겼다고 했을 때, 지금 내가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가족구성원을 바꿀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나면 그 문제를 유발하는 상황과 나를 '거리두기'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겪었을 때, 이미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 내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구나'라며 선택권을 쥘 수 있습니다.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 상황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며 나를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 큐레이터의 문장 🎒 ]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을까.'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럴 때면 속상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그런데 후회는 고통스럽지만 달콤하다. '그때 그런 잘못을 안 했더라면" 이란 가정법은 잘못된 과거를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상상 속으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일 만 아니었어도 나는 지금 더 잘 돼 있을 거야' 후회 속에는 이런 마음이 숨어 있다. 우리는 과거의 사소한 실수만 아니었어도 크게 바뀌어 있을 현재를 상상함으로써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경우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가 더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후회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고치려고 현재와 미래를 담보로 내놓고 있는 것과 같다. 잘못된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지금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그들이 커다란 우주복을 입고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주복 안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감히 우주복을 벗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과거에 얽매여 있다. 우주복을 벗으면 세상의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볕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차마 그럴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한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폭력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둔 여자가 알코올중독자인 남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과거'라는 우주복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도돌이표처럼 끔찍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실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성장하고자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힘이 없을 때 너무나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아이는 깊은 상처를 안고 마음속 깊숙이 숨어 버린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성장하기를 멈춰 버린다. 그렇지만 그 아이도 어떻게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과거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그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거나 극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저 고통만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그처럼 과거에 묶여 꼼짝도 못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풀 수 있도록 해석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질문은 던진다. "그래서요? 과거를 알면 어떻게 되는데요?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고통스러운 과거가 갑자기 없어지기라도 하나요?" 그들의 말이 맞다. 사람들 앞에만 가면 불안하고 도망치고 싶어지는 마음이 어릴 적 무서운 아버지가 조그만 실수에도 심하게 야단치고 벌을 주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무섭고 엄한 아버지가 갑자기 따뜻한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어릴 적 외갓집에 보내졌던 기억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처럼 이론적으로 현재 자신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이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을 '지식적 통찰'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식적 통찰은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 통찰'이다. 그것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 '아 , 그렇구나' 하고 가슴 깊이 느끼며, 그동안의 슬픔과 두려움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을 말한다. 그리고 이 감정적 통찰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한 번의 통찰로는 불충분하다. 사람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과거를 반복하려는 속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통찰을 생활에 적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 걸음 전진하면 한 걸음 후퇴하고, 또 한 걸음 전진하면 다시 한 걸음 후퇴하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성적 통찰'보다 나은 '감정적 통찰' | RBBM

REDBUSBAGMAN | 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이성적 통찰'보다 나은 '감정적 통찰' | RB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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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5일 오후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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