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알게 된다면]
핀란드가 인공지능의 기본 원리 교육과정을 무료로 온라인에 공개했습니다. 오늘은 이 수업의 사례를 보며 핀란드식 디지털 시민 교육 비전에 대해 좀 적어보겠습니다.
1. 작년 말, 핀란드는 유럽연합 상임위원국가직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이때 '핀란드라는 작은 나라가 유럽연합에게 주는 선물입니다~'라며 인공지능 원리를 가르치는 "Elements of AI"라는 온라인 강좌를 무료로 공개한 바 있지요. (참고: 매 6개월 씩 마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상암위원직을 돌아가면서 맡습니다. 핀란드 총리가 작년 말에 맡았고 지금은 독일 메르켈 총리가 상임위원입니다.)
2. "Elements of AI"라는 제목의 이 작은 온라인 수업은 주 5시간 x 6주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게 도대체 뭐야?" 싶습니다.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요?'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변화는?' 등 교양 수업 위주로 꾸려져 있거든요. 코딩 기술이라곤 전혀 가르쳐주지 않고, 문제들도 쉽습니다. 성적도 pass/fail로만 매깁니다. 이걸로 뭘 어쩌겠다는지 사뭇 아리송할 수도 있습니다.
3. 하지만 "Elements of AI"를 자세히 들여다보면...'핀란드식 디지털 시대의 글로벌 시민 교육'의 기본 틀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입도 쉽게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주제를 던집니다. 예로 '인공지능은 무엇인가' 챕터를 보면 '인공지능은 00이다' 식의 정답이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어디까지를 인공지능'이라고 불러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드는 내용들이 주욱 적혀있죠. 보는 이로 하여금 '어라? 그렇네?'라며 생각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렇듯 이 수업은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는 것, 즉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이렇듯, 최근 핀란드 교육계가 지향하는 '디지털 시대의 글로벌 시민'에 대한 비전은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발전을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단 오히려 그 기본 원리와 사회적 파급에 이해하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자 (디지털 역량). 변화하는 사회와 기술발전을 이해하고 꾸준히 자기 계발을 추구할 수 있는 자 (평생 배움의 자세). 문화, 종교, 인종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수용능력을 지닌 자 (글로벌 역량 + 포용 능력).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정보 속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팩트를 체크하며,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자 (리터러시 역량). 이 비전을 토대로 지난 2016년에 핀란드 교육개편이 이루어진 바 있죠. 교육개편 매뉴얼 어디에도 '00 과목을 00 수준까지 공부한다' 라거나 'xx 소프트웨어의 기초와 심화를 익힌다' 등의 정답성 지침은 보이지 않습니다.
5. 왜 이럴까요? 음...개인적으로 보기에, 핀란드 교육은 특출 나게 잘하는 1명보다는 두루 준수한 100명의 시민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이 동네는 천재적 영웅이나 눈 부신 경제적 성장은 없지만 그 대신 깨끗한 환경과 청렴한 신뢰사회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여전하고요.)
6. 그런 핀란드 교육에서, 몇 년이면 교체될 특정 코딩 기술을,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가르치는 것은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럴 능력도 못 된다고 이 동네 교육계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있고요. 몇 년에 한번씩 학교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교체하고 교사들에게 새 기술을 가르치라고 요구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그대신 핀란드 교육자들은 교육의 역할이 '가급적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 사유할 수 있도록 교양과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이후 코딩 기술을 익힐지 말지는 학생 본인의 선택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동네에는 어린이 대상 코딩 학원이 없습니다. 주입식 교육도 없고요. 그 대신 디지털 글로벌 시대에 대한 토론 수업과 '자기 생각 쓰기/말하기' 숙제를 주구장창 합니다. 코딩 놀이 교구들이 좀 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코딩 수업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단계에서나 등장합니다. 코딩을 정말 배우고 싶은 젊은이들이라면 학교에서 익힌 비판적 사고 능력을 토대로 인터넷을 누비며 스스로 정보를 찾아낼 수 있을테니까요. 그렇게 선행학습이나 경쟁 없이도 이 동네는 유럽 내 최고 수준의 IT 산업을 이룩했습니다.
7. '디지털 시민 육성'이라는 메시지 하에 코딩 수업을 제시한 한국 교육계. (그리고 거기에 발 맞추어 무수히 등장한 코딩 학원들...) 그리고 지구 반대편 '디지털 시대 글로벌 시민'이라는 모토 하에 사유하는 대중을 만들고자 노력 중인 핀란드.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지점입니다. 과연 한국 교육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