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마 '느슨한 연대(weak ties)'라는 말이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은 5-6년 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편하고 자유롭게 만나 팀을 구성하고 프로젝트성 업무를 수행한 뒤 또 쿨하게 헤어지는 사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쓰이지만, 사실 느슨한 연대의 시작은 '끈끈한 연대'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죠. '왜 내가 당신과(혹은 당신들과) 필요 이상의 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하는 원론적인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우리 삶으로 급격하게 침투해 들어온 SNS 활동이 그 피로감을 폭발시켜버렸으니까요.
02. 저는 개인주의의 가치를 꽤 높이 사는 편입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만큼이나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고,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존중하는 사이가 훨씬 매끄러운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거든요.
덕분에 저 같은 유형의 사람은 '느슨한 연대'의 바람이 솔솔 불어오면서부터 많은 부분이 편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이제야 정상적으로 동작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03. 최근 선보인 카카오톡의 '조용히 나가기' 기능이 호평을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저 'OOO 님이 (그룹에서) 나갔습니다'라는 그 한 문장의 흔적을 지워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반가워들 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죠.
성균관대 사회학과의 구정우 교수님이 쓴 '나는 연결되고 싶지 않다'의 칼럼에서도 이 지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버스에 탑승하고 내리는 것처럼, 내가 원할 때 쉽게 참여하고 또 이탈할 수 있는 유연한 관계'라는 표현처럼 우리 사회는 관계의 ON & OFF를 훨씬 자유롭고 효율적이게 가지고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바로 개인주의에 대한 존중부터 시작될 수 있는 거겠죠.
04. connect라는 가치는 disconnect가 가능할 때 그 의미를 가집니다. 물리적인 측면에서 따져봐도 매 순간 연결되어 있다는 건 큰 에너지 낭비이자 과부하의 위험이 늘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불필요한 순간에는 전원을 뽑거나 적어도 잠자기 모드(?) 정도는 유지해야 다시 connect 되었을 때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봅니다.
05. 물론 반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느슨한 연대만으로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죠. connect 와 disconnect가 잘 전환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없고, 자칫 표면적인 관계에 머물다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실 이 말도 맞습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니 반대급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겠죠. 하지만 저는 사회의 모든 가치에 양면의 단어들이 모두 존재하면 좋겠습니다. 즉, 끈끈한 연대와 느슨한 연대, 선택적 참여와 비선택적 참여, 적극적 표현과 소극적 표현이 서로 공존하길 바라고 양쪽이 모두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06. 그런 의미에서는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 등에서 사용되는 표현과 기능들이 그 가치를 많이 수용해 주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주장으로만 존재하면 그 역할과 중요성을 쉽게 체감하기 어렵지만 내가 자주 쓰는 것들에서부터 그 변화가 시작되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포인트가 생기거든요. '우리가 왜 존재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묻는 게 기획자가 가져야 할 첫 번째 질문이라면 의외로 이런 지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07. 더불어 다시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습니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현대 서비스에서 최소 단위가 '개인'이 되지 않는 서비스는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공유든, 교환이든, 협업이든, 소통이든 누군가와 연결되고 교류하고자 하는 의지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를 가능케 하는 가장 작은 단위는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니까 말이죠.
따라서 저는 보다 개인에 집중된 이야기들을 들으려 할 때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같아요. (꼭 제가 개인주의 옹호자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고...) 결국 전체를 움직이는 객체를 이해할 때 촘촘한 기획이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08.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나무보다는 숲을 보라고 얘기하지만, 반대로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어떤 모양으로 어떤 생태계의 일부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각자의 자리에서 미시적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에 돋보기를 대어보는 것 역시 꽤 큰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