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일본 교토의 한 선술집. 팔십이 넘은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의 말에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토 일대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30~40대 젊은 사업가들이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도 기업 경영이 주류였습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한 사업가가 푸념하듯 말했습니다.
“저는 빌딩이나 교량에 도료를 칠하는 도장(塗裝)업종의 영세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간에선 이 일을 ‘3D 업종’으로 여깁니다. 젊은이들은 잘 오지 않고 걸핏하면 이직합니다. 제가 원해서 한 사업은 아니고 가업을 이어 받은건데, 포기하자니 차입금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긍지를 심어줄 수 있을까요?”
노인은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잠시 이 사업가를 바라보더니 말문을 열었습니다.
“고작 도장업자라고 했는가? 100년 넘은 에펠탑이 꿈쩍도 하지 않은 건 녹슬지 않도록 매년 도장을 다시 하기 때문이네. 도장업은 가치 있는 일이야. 어쩔 수 없이 맡은 사업이라고? 그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해. 사장인 자네가 일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데 직원들이 어떻게 자부심을 느끼겠나. 왜 그 일을 해야하는지 ‘명분’부터 세우게.“
이에 젊은 사업가도 지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다들 책임감이 없고 변명하기 급급합니다.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비결을 알려주십시오.”
노인은 답했습니다. “비결이라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왕도가 없어. 마음을 다해 설득하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직원들에게 호소해야지. 그다음엔 누가 보든 말든, 자네부터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 열중하게. 그것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경영의 시작이네.“
젊은 사장을 상대로 아낌없이 조언을 한 이 노인은 누구일까요. 바로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입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그의 경영철학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나모리는 회사가 성장할수록 경영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타심을 들었습니다. “회사는 경영자의 그릇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없다. 기업은 사람이 모인 집단이며 리더는 그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동기는 선(善)해야 하고 사심이 있어선 안 된다.”
이나모리의 경영철학은 수많은 젊은 기업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줬습니다. 그가 생전에 밝힌 ‘경영 12개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업의 목적과 의의를 명확히 한다.
2.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직원들과 공유하라.
3. 강렬한 소망을 마음에 품는다.
4.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노력한다.
5. 매출은 최대로, 경비는 최소한으로 한다.
6. 가격 결정은 경영이다.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다.
7. 경영은 강한 의지로 결정된다.
8. 불타오르는 투혼을 발휘하라.
9. 용기를 가지고 일한다. 비겁한 행동은 안 된다.
10. 항상 창조적으로 일한다. 끊임없이 개선하라.
11.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한다.
12.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꿈과 희망을 품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21세기 글로벌 기업 경영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가 있습니다. 2020년대 최대 ‘문제적 기업’ 테슬라입니다. 이 회사는 2020년 7월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기업 시가총액 1위에 올랐습니다.
도요타는 한 해 1000만대에 육박하는 차량을 파는 글로벌 1위 완성차 기업입니다. 그런데도 시가총액은 현재 3배 차이입니다. 시장은 작년 130만대를 판 테슬라가 ‘미래 모빌리티’의 선두 주자임을 인정한 겁니다. 도요타는 지난 4월 뒤늦게 CEO를 바꾸고 전기차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설립 20년 차 신생기업 테슬라는 어떻게 완성차 기업들의 롤모델이 된 걸까요. 그 중심엔 일론 머스크가 있습니다. 종잡을 수 없고 때론 오만해 보이는 이 혁신가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범인(凡人)이 상상할 수 없는 ‘원대한 비전’입니다. 인물의 그릇 크기가 남다르다는 겁니다.
“테슬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태양광 전기 에너지 경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돕는 것이다” - 2006년 8월 『테슬라모터스 비밀 마스터플랜』
머스크가 2006년 공개한 테슬라 첫 장기 비전 ‘마스터플랜’의 세 번째 문장입니다. 당시 테슬라의 직원은 고작 100명. 그동안 제작한 차량은 20여대에 불과했습니다. 머스크가 마스터플랜을 내놓자 사내에선 모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냉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에드워드 니더마이어 『루디크러스』).
직원들은 ‘운이 좋아서’ 회사가 상장하면 큰 몫을 챙길 거란 기대에 테슬라에 합류한 이들이 상당수였습니다. 머스크의 비전은 실리콘밸리의 작은 벤처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원대했습니다.
머스크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구를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테슬라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데 자네가 필요하다. 이 투쟁에 동참해달라” 황당한 비전이었지만 열정적인 20대 젊은이들에게 머스크의 말은 마법처럼 먹혀들었습니다.
그의 ‘스토리 메이킹’은 테슬라를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기업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테슬라에 들어온 인재들은 단순한 임무를 맡을 때조차 그것이 인류를 구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신이 기업이 아니라 괴짜들의 집합소나 실험실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미카엘 발랑탱 『테슬라 웨이』).
머스크가 ‘완벽한 인간’이란 얘기는 아닙니다. 그에게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나모리는 경영자의 자질 중 인의(仁義)를 특히 강조했습니다. 리더는 인격 수양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직원들을 거칠게 압박하고 툭하면 해고하는 머스크와는 거리가 있는 자질입니다.
그럼에도 이나모리의 ‘경영 12개조’를 다시 살펴봅니다. 머스크의 메시지는 때론 과장되긴 했지만 한결같았습니다. “테슬라는 결국 망할 것”이라며 비웃던 이들도 공장에서 자며 주당 120시간 일하는 그에게 기가 질렸습니다. 어느새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의 꿈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 맨’에게 계속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