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그게 아니고요.” 지금 대세는 X타입이다. 그런데 고객은 Y타입을 구매하려고 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어떻게 대세를 그렇게 모를 수 있을까? 고객은 바보일까?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네, 당신 말이 맞습니다. Y타입으로 사세요.”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요즘은 X타입이 대세인데 왜 자꾸 Y를 얘기하세요“라며 따질 것인가?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로보틱프로세스자동화 RPA업체인 소프토모티브코리아의 이문형 지사장이 컴퓨터 서버 세일즈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 지사장이 고객사에 영업하러 갔을 때, 고객의 선택 앞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유닉스(UNIX) 서버를 사용하는 것이 대세가 된 시점에 고객은 X86 서버를 채택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사장은 유닉스 서버를 취급하는 회사의 영업 대표였기에, 고객이 X86 서버를 고집하자 곤란하기도 했고, 대세에 어긋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X86 서버를 쓰는 기업의 제품은 서버로도 안 볼 때였어요. 그런데 X86으로 간다는 거죠” 그는 고객의 생각이 틀려도 한참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지사장은 “그게 아니고요. X86은 대세가 아닙니다. 유닉스로 가셔야 합니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런데 고객은 X86을 고를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종 업계의 다른 회사들에 비해 늦게 출발한 고객사로선 이미 대세가 된 유닉스를 채택하면 차별성도 경쟁력도 없었던 것이다.


유닉스 서버를 사용하면 남들을 뒤늦게 따라간다는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래서 대세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들과 다른 서버를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 속사정도 모르면서 그건 대세가 아니라는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니...


결국 그 고객은 X86 서버를 구매하긴 했지만, 좋은 관계를 놓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고객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나 고객을 존중하고 있는가?


“네, 그렇군요. 전체적인 흐름이나 합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X타입이 대세인데, 그런 선택을 하시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가 있다면 혹시 뭘까요?”라고 질문해보자. 실수도 줄이고 고객의 솔직한 상황도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된다.


혹시 지금 ‘내가 고객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자. 세일즈를 하다 보면 고객을 가르치려 하는 큰 실수를 범할 때가 있다. 특히 ‘내가 좀 알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런 경우가 많다. 가르치려는 경향의 세일즈는 학구적인 엔지니어 출신이나 회사 대표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설사 고객이 가르쳐달라고 한 경우에도, 가르치는 듯한 태도는 자칫 잘난 체하다가 세일즈를 망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 옳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래 당신 잘난 거 알았어. 참고해서 다른 사람한테 살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겸손은 손해 보는 일이 없다. 고객이 틀린 이야기를 해도 바로 지적부터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먼저 고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야 한다. “잘 들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도 있습니다.” 고객의 이야기를 반박하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대화하면서 맞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좋다.


세일즈에서 어떻게 그렇게 하느냐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고집하다가 세일즈를 놓치는 것 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내 생각을 설파하고 고집하려면 학계나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지 왜 굳이 고객을 상대로 세일즈를 하려 하는가?


세일즈는 주입이 아니라 소통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이루어주는 것이다.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오히려 입을 꾹 닫고 가만히 듣자. 그러면 상대방은 자기 이야기가 맞으니까 계속 듣고 있겠지 생각하면서도 들어주는 내가 좋아서 내 이야기도 들어주려고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세일즈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어 있다. 고객이 내게 호감을 가지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세일즈맨이 고객에게 자신의 제품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다가 고객의 호감을 놓치고 세일즈에 실패하는 실수를 하는데, 이제부터 ‘나는 고객에게 배운다’라고 마인드를 바꿔보자.


지인 중 한 명은 미팅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 관련 부분은 저도 오늘 새로운 식견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고객은 뿌듯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면서 맞은 편에 앉은 세일즈맨도 좋아 보이게 된다. 세일즈 성공 확률은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오늘 여러 건의 세일즈를 했다면 한번 돌아보자. 나는 오늘 고객을 가르쳤는가, 고객에게 배웠는가? 배우고 왔다면 훌륭한 세일즈를 한 것이다.


배워야 고객의 요구를 알 수 있다. 고객의 니즈는 내 제품이나 솔루션, 서비스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줄 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한다. 그게 반영이 되면 판매도 증대된다. 배우고 판매도 잘 되고 얼마나 좋은가? 일석이조 아닌가? 잘 듣고 공감하는 능력이 높은 세일즈맨은 이러한 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부처에게 물었다. “제 안에는 두 마리 개가 사는 것 같습니다. 한 마리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사랑스러우며 온순한 놈이고, 한 마리는 아주 사납고 성질이 나쁘며 매사에 부정적인 놈입니다. 이 두 마리가 항상 제 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녀석이 이기게 될까요?"


부처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러고는 아주 짧은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다.”


세일즈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고객 앞에 서면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내가 가진 지식을 가르치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교만한 나’에게 먹이를 주지 말고, ‘고객에게 배우고 고객을 높여주는 나’에게 먹이를 주면서 겸허하게 고객에게 배워야 한다. 고객의 언어를 알려면 꼭 기억해야 할 말이다. 고객이 내 스승이다.

02. 고객이 내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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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9일 오전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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