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의(隔意)” 속마음을 터놓지 않는다는 뜻의 한자어다. 거리낌 없이 서로가 소통하는 일을 우리는 ‘격의가 없다’라 표현한다. 이 격의를 부수는 사건 하나가 지난 2019년 일어난다. 남극에서 온 어린이펭귄 펭수에 의해서다.


청운의 꿈을 안고 연습생이 된 펭수는 당시 EBS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명중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술경영아카데미 원장을 존칭 없이 “김명중”으로만 호명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 원장은 자신의 손녀 역시 펭수가 할아버지 이름을 마구 부르는 것을 의아해했다고 전했다.


“제 손녀도 이해를 못 하는데 교육방송 EBS가 그 금기를 깨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 제작진의 용기가 펭수란 혁신적인 콘텐츠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리랑TV 부사장과 한국방송광고공사 상임감사, EBS 사장을 지낸 김 원장의 별명은 ‘소통의 리더’다. 그는 구성원이 신나게 일할 수 있고 존중을 느끼며, 또 그들에게 동기부여가 이루어지는 조직을 만드는 것을 리더의 역할로 꼽는다. 펭수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김 원장은 권위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공감이 우선인 펭수의 기획안을 보고 성공을 예상했다고 회상한다.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제작진이 이 기획을 이끌도록 모든 권한도 부여했다. 결과는 대성공. 서울산업진흥원은 펭수의 상표가치를 4천억원으로 평가했고, 그 가치가 뽀로로를 뛰어넘는다는 평가도 잇달았다.


시대와 세대의 간극을 조율하려 한 김 원장의 노력이 과녁에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재임동안 EBS에서 거둔 성과는 나보다 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구성원의 공(功)”이라며 “조직에 활력이 생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란 자신감이 생겨나 고무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이 취임한 이후 EBS는 4년 연속적자에서 벗어나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팬데믹상황에선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온라인교육을 정상궤도에 올렸다. 강연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도 ‘수신료의 가치란 이런 것’이란 호평을 얻었다.


“리더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아요.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그 곡은 재창조되니까요. 그래서 오케스트라는 하나의 사회고, 누구 하나 낙오자가 생기면 불협화음이 생기기에 리더는 구성원의 장점을 파악하고 원만한 협업을 꾀해야 합니다.”


앞에서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역할이 지금만큼 중요한 적이 없다고 한 그는 저서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분석할 것 ▲리더의 권력을 모두와 나눌 것 ▲마음을 얻기 위해 귀를 열고 공감할 것 ▲창의성을 위해 경험을 넓힐 것을 독자에게 주문한다.


요즘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MZ세대의 행동에 관해서는, 업무의 효율성을 위한 판단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 강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어폰을 끼고 일하는 신입사원에 대한 반감은 ‘감히 대답을 안 해?’에서 기인한 정서적인 반감이고 권위주의의 재현이란 얘기다.


그는 “사회가 위계중심에서 수평적으로 바뀌었음에도 이런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 구성원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며 “MZ세대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고 그들의 역량을 조직에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집필한 <리더는 마음을 만지는 사람이다>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지시적 리더 ▲보상과 처벌을 이용하는 거래적 리더 ▲비전과 사명감을 강조하고 사기를 고양하는 변혁적 리더 ▲직원을 리더로 성장시키는 슈퍼리더까지, 리더십유형을 4가지로 나눈 김 원장은 그가 좋아하는 시로 김수영 시인의 ‘풀’을 언급했다.


강풍 앞에서도 늘 제자리를 지키는 풀처럼 리더란 쓰러져도 일어서는 존재라 그는 말한다. 실패란 쓴 약은 성장의 과정이고, 강한 생명력은 그 과정을 버틸 조건이란 얘기다.


“리더는 태어나는 게 아니에요. 만들어지는 거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과거 크고 작은 실수를 겪었고, 그 속에 스스로를 다듬었으니까요. 실패하지 않는 리더는 세상에 없어요. 성공은 실패를 딛고 일어설 때 얻는 것이고, 우리는 그 실패 가운데 인내력과 창의성을 키우죠.“


”세상에 범용적인 리더십은 없습니다. 다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변화에 민감히 대처하는 자세, 그리고 구성원의 장점을 볼 줄 아는 눈만 있다면 이미 리더의 자질은 충분해요.”

김명중 "펭수 제작진에 전권부여...리더는 지휘자죠"

파이낸셜투데이

김명중 "펭수 제작진에 전권부여...리더는 지휘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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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6일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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