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누가 내 차 좀 박아줬으면’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관계가 힘들어서였다. 모든 관계가 그렇다. 학교도, 군대도, 하다못해 가정 안에서도 관계 때문에 힘들다.


이제는 좀 단단해졌겠지 싶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상처받고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걸 깨닫는다. 관계에 유연해지는 방법은 없을까? 좀 더 대담해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경일 인지심리학자를 만났다. 그는 요즘 가장 ‘핫한’ 심리학자다. 어렵게 성사된 자리에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하나도 놓치지 않기 열을 다해 노트북 자판을 두들겼다. 1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해답을 얻었다.


1️⃣요즘 근황은 어떤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강연, 기업 자문, 세미나 활동도 한다.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은 6년째 하고 있다. 게임과학연구원에서 연구도 한다. 책 출간도 준비 중이다.


2️⃣놀랍다. 소화가 가능한가?

🅰️같은 일만 하면 빨리 지친다.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것이다. ‘번아웃’은 같은 일을 많이 해서 오는 게 아니라 같은 일만 해서 오는 거다. 일이 다양해지면 번아웃이 오지 않는다.


3️⃣심리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 같다.

🅰️30년 전에는 심리학자가 이렇게 많이 불려다니지 않았다. 비인기학과 때 들어와 인기학과 교수가 됐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기면 정신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3만 달러를 넘기면 사고 역량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나라도 정확하게 그랬다. 20년 전 2만 달러를 넘기면서 심리상담과 우울증 등에 관심을 보였고, 3만 달러 시대인 지금은 인간의 정신 능력과 자아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추세를 봐도 알 수 있다. 사랑 이야기가 없어졌다. 요즘은 자기실현,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한다.


4️⃣결국 관계다. 그 안에서 상처받고, 상처를 준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최근 한국사회에 제일 중요한 건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 ‘상대를 바꿀 수 없다’는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끝까지 머리채 잡고 싸울 뿐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수동•회피적으로 인정했다. 능동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맞출 수 있는 점만 맞추고 서로를 허용해야 한다. 그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다. 지금은 그 길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


5️⃣불편한 사람과는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나?

🅰️상대와 나의 관계를 훨씬 긴 문장으로 표현하면 된다. 불편한 관계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나와 안 좋은 사람도, 안 친한 사람도, 낯선 사람도 불편한 관계가 될 수 있다.


불편한 관계를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인지 바꿔서 얘기하면 된다. 직장 상사라고 치자. ‘한 달에 한 번 정도 밥 먹으면 너무 좋은 관계’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집주인과 세입자는 ‘계약할 때 보면 딱 좋은 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불편한 관계를 ‘~하면 좋은 관계’로 바꾸면 된다. 긍정의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6️⃣다른 조직보다 폐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까?

🅰️마음이 잘 맞고 성향이 잘 맞는 사람끼리 있으면 직무능력이 올라간다. 마음이 잘 안 맞고 성향이 잘 안 맞는 사람끼리 있으면 사회적 능력이 올라간다. 살아가려면 이 2가지가 다 필요하다.


나와 안 맞거나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확률이 매우 높은 조직이 군이다. 다른 말로, 군에서는 사회적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뜻이다. 나 또한 3년의 군 복무 동안 엄청난 사회적 능력을 배웠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긍정요인으로 두면 부정요인에 대처하기 쉬워진다.


솔직한 투덜거림도 필요하다. 누르는 언어, 위선적인 언어는 사용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A—B—C 순서대로 일해야 하는데 지휘관이 C부터 하라고 했다. C는 결과에 가깝기 때문에 일이 더 어려워진다. 일이 더 쉬워졌다면 짜증 날 일이 없다.


그때 ‘까라면 까야지’란 생각은 안 좋은 거다. 누르는 언어다. ‘날 성장시키려고 하시는 걸 거야’라는 생각도 안 좋다. 위선적인 언어다.


이땐 ‘아~진짜 왕짜증, 우리 단장 이 양반, 날 거의 연대장 취급하고 있어’, 이렇게 말하면 된다. 내 자존감을 지키고 격을 올리는 것이다. 솔직한 투덜거림은 뇌를 덜 스트레스받게 한다.


7️⃣스트레스 해소법도 알려달라.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다. 100점짜리 행복 1번보다 10점짜리 행복 10번이 낫다. 스트레스 해소도 마찬가지다. 100점짜리 해소 1번보다 10점짜리 해소 10번이 낫다.


회사 일로 속에서 열불 터져 죽겠는 날, 친구를 만나 구워 먹고, 볶아 먹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러면 마음이 좀 풀리고 다음날 꾸역꾸역 출근한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다 갖고 있다. 이런 게 10점짜리 해소법이다. 이걸 기록해야 한다.


사람들은 “발리를 갔네” “구찌를 샀네” 같은 1000점짜리 해소법을 기록한다. 하지만 소소한 것들은 기록하지 않는다.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게 하는 에피소드를 기록하면 된다. 이런 걸 많이 할수록 스트레스 해소를 잘하는 사람이다.


8️⃣관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어느 날 친한 교수님과 대화하던 중 정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정의를 ‘내가 살고 싶은 사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의 인생관이 확실히 보이는 정의다. 자기다움이 있는 것이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정의’가 있는 사람은 이미 완성된 자기다움을 가지고 있다. 자기다움이 있는 사람은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아! 이곳은 내가 필요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니까 흔쾌히 물러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정의가 없는 사람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정의의 반대말이 고집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2가지를 동일시한다. 그래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고집만 남아 소모적인 논쟁을 한다. 남의 정의만 좇지 말고 자기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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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7일 오후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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