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라는 '반사 신경'

01 . 10년 넘게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온 임경선 작가님의 ⟪태도에 관하여⟫를 최근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좋은 문장들이 쏙쏙 눈에 들어왔고, 공감 되는 지점들 역시 또 한 번 반갑게 만날 수 있어 무척 기쁘더라고요. 더불어 최근 리뉴얼 된 버전을 사서 읽은 덕분에 조금씩 업데이트된 내용들을 만나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게 2016년, 두 번째 읽은 것이 2020년,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게 되었으니 삼회독을 하는 과정에서 저 또한 한뼘이라도 더 성장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것도 사실이었죠.


02 . 그러다 문득 두 번째 읽을 당시 책 앞에 써놓은 소감 문구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나름 제게 의미 있었다고 생각되는 책 앞에는 짧게나마 메모를 덧붙여 그 소감을 기록해놓는 습관이 있는데, 그 때의 나는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었나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진 것이죠. 아마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7-8년 정도가 흐른 즈음이었고,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만큼 실제 사람들과의 관계 보다 저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더 많았을 그 시간에, 나는 '태도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른 겁니다.


03 . 그리고 그때의 저는 이런 문구를 써놓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누군가는 태도가 경쟁력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태도가 지능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태도는 반사 신경이다. 오랫동안 나의 몸과 마음에 새겨온 다짐들로 큰 고민 없이 언제나 즉각적으로 내보일 수 있는 것. 얄팍한 계산이나 요란한 허세를 거치지 않고 나의 진심으로부터 나의 행동까지 이어지는 최단거리.'


04 . 다행인 건 그때나 지금이나 태도에 관한 제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생각이야 언제든 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과거의 내가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반가운 지점이니까요)

살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겪게 되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러다 보면 묘한 공통점 하나가 발견됩니다. 그중 하나는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누군가에게는 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점이죠.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나든 본인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풀어 놓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늘 그 주위에는 본인을 힘들게 하는 비상식적인 사람들만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05 . 처음엔 저도 곧이곧대로 그 말들을 들어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니 저도 자연스레 알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1이라면 자기 방식대로 변형하고 곡해한 과정을 거쳐서 스스로 9..10.. 아니 그보다 더 큰 답답함과 억울함을 생산해 내고 있단 사실을 말이죠. 그러니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길만한 일을 '나에게 감히?'라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그저 평범한 말 한마디조차 심한 과장을 덧대어 옮기는 바람에 발화자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쯤 되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태도만큼이나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죠.


06 . 태도를 '반사 신경'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였습니다. 우리네 삶에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견지해야 하는 태도가 있나 하면 실생활에서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드러나는 태도들도 있습니다. 꼭 눈앞의 무엇인가를 위해서 갖춘 태도가 아니라 늘 본인의 기준 속에서 '옳다'라고 생각하기에 익혀온 것들이 말과 행동으로 전환되어 반응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실상 이런 태도들이야말로 그 사람에 대한 진짜 평가를 내리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태도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 사람이 의식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을 때는 얼마나 더 좋은 태도를 보일지 사뭇 기대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07 . 제가 봤을 때 태도의 반사 신경이 좋은 사람들 역시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것들 중 제가 가장 인상 깊게 본 특징은 본인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의 반응이었는데요,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되어 누군가에게 그 기분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듯 말하는 게 아니라 늘 자신의 기준을 기반으로 적어도 한 번은 필터링을 거친 채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배려라는 말로도 부족하고, 메타인지라는 단어로는 더 부족한 특유의 태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죠.


08 . 예를 들어 '나에게 오늘 ~ 이런 이런 일이 있었는데, 여러 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려 해도 하루 종일 찜찜한 기분이 따라다니더라고. 내가 너무 민감한 걸까 아니면 상대가 무례했던 게 맞는 걸까?'라든지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구해서 ~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너무 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달했던 것 같아. 오해가 없도록 이따 다시 가서 더 잘 설명해 줘야 할 것 같아'처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여러 입장에서 고민해 본 후 나름 해결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잘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할 때조차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 날 것으로 전달될까 봐 늘 조심하는 태도를 발견할 때만 '아 나도 저런 태도는 꼭 배우고 익혀놓고 싶다'는 생각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들게 되죠.


09 . 저는 이런 노력이 가능한 이유는 평소 본인이 가진 좋은 기준들이 반사 신경처럼 작용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운동역학에서는 반사 신경을 두고 이런 진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반사 신경이 뛰어나면 일반적인 움직임에서의 에너지 소모가 훨씬 효율적이다. 학습과 경험에 의해 자신만의 최적 동선이 갖춰진 결과 불필요한 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태도 역시 마찬가지겠죠. 평소에 태도의 반사 신경이 좋은 사람들은 사소한 부분들을 대함에 있어 굳이 꼬아서 듣거나, 이기적으로 생각하거나, 소모적으로 언쟁할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대신 진짜 그 에너지를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자신을 객관화시켜 가면서까지 좋은 방향으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거죠. 어디다 에너지를 써야 하고 어디다 쓰지 않아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셈입니다.


10 . 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좋은 태도를 가지려는 노력만큼이나 정말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즉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태도들을 잘 익혀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들은 남들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이 역시 그동안 우리에게 반사 신경처럼 보여준 좋은 태도들이 기반이 되어 혹시라도 그 사람을 평가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마저 아주 명쾌하고 정확하게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태도를 갖춘 사람'이란 그 한 문장으로 말이죠.

그러니 본인 기분 좋을 때는 세상이 다 같이 기뻐해 줘야 하고,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세상이 같이 울어줘야 한다는 얌체 심보는 저 멀리 던져두고 이제 언제든 즉시, 빠르고 가볍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태도들을 학습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어차피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 태도라면 필요할 때마다 새로 익혀서 보여주는 건 너무 힘들고 비효율적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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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9일 오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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