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딩 에이전트에게 프론트엔드 앱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거의 예외 없이 React와 Tailwind 조합이 나옵니다. Svelte 같은 신생 프레임워크나, 최근 JavaScript와 CSS에 추가된 웹 표준 기술들은 제가 먼저 언급하지 않으면 AI는 제안조차 하지 않죠. v0, Bolt, Lovable 같은 AI 빌더를 써도 결과물은 놀라울 만큼 유사합니다.
처음엔 이게 무척 편리했습니다. AI가 가장 대중적인 기술을 추천해주고, 능숙하게 코드를 수정해주니까요. 몇 번의 프롬프트만으로 그럴듯한 UI가 완성되고 기본 기능까지 작동하는 걸 보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이라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개발자로서 이보다 더 매력적인 도구가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편리함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똑같은 기술 스택을 선택하게 되더군요. 이번엔 좀 다른 걸 써볼까? 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AI가 제안하는 방식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게 정말 최선인지 고민하지 않게 된 겁니다. 이건 혹시 프론트엔드 생태계의 다양성이 서서히 잠식되고 있다는 신호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는 본질적으로 확률 기반의 패턴 매칭 머신입니다. 이미 인터넷에 데이터가 많이 축적된 기술일수록 더 자주 추천되고, 그 추천이 다시 학습 데이터로 되돌아가며 강력한 피드백 루프를 만듭니다. React가 많이 쓰이니까 더 많은 AI가 React를 추천하고, AI가 React를 추천하니까 더 많은 개발자가 React를 씁니다. 특히 바이브 코딩을 통해 유입된 비개발자분들은 자연스럽게 AI가 선택한 기술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기술을 시도하려 해도 결과물의 품질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결국 AI의 결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순환 속에서 새로운 접근법이나 혁신적인 대안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AI가 제시하는 기본값에 익숙해진 개발자는 다른 가능성을 탐색할 이유를 잃어갑니다. 어떤 기술이 우리 프로젝트에 타당할까라는 질문 자체가 사라지고, AI가 제안하지 않는 기술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React와 Tailwind는 수년간 검증된 훌륭한 조합입니다. 커뮤니티도 크고 생태계도 탄탄하죠. 하지만 우리가 그것들을 선택하는 이유가 "우리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해서"가 아니라 "AI가 추천했으니까"로 바뀌고 있다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선택의 근거가 개발자의 경험과 판단이 아니라 AI의 통계적 선호에 의해 결정되는 순간, 주체성은 희미해지고 엔지니어링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AI 코딩 도구가 등장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웹 프레임워크들이 잇달아 출시되면서 언젠가 React도 jQuery처럼 차세대 기술에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AI의 힘을 등에 업고 시장에서 React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혁신을 이끈다고 믿었던 AI가 새로운 기술 혁신의 여지를 줄이고 있는 셈입니다. 기존 기술은 따라잡힐 걱정이 없으니 변화할 이유를 잃고 안주하며, 후발 주자는 애초에 경쟁 상대가 안 되니 시작할 동력을 얻지 못합니다. 마치 소득 격차가 커지며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어딘가 닮아 있어, 조금 씁쓸하게 느껴지게도 하네요.
장기적으로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프론트엔드 생태계는 지나치게 획일화될지도 모릅니다. Svelte의 컴파일 타임 최적화, Vue의 직관적인 접근성, Solid의 반응성 모델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주목받지 못한다면, 그건 단지 몇몇 프레임워크의 문제가 아니라 프론트엔드 기술 전체의 발전에도 손실일 겁니다. 기술의 다양성은 단지 선택의 폭을 넓히는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고방식과 가능성을 여는 창이기도 하니까요.
언제부턴가 "요즘 UI는 다 거기서 거기 같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혹시 AI가 던져주는 고정된 선택지에 우리 모두 길들여져, 개발자로서 다양한 접근에 대한 호기심과 실험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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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2일 오후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