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젊고 세련된 취향보다 중요한 것
Hani
나도 모르게 취향에 위계를 두었던 건 아닐까요? 40대가 하면 동호회, 20대가 하면 러닝크루. 나의 취향을 존중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취향에 피해를 준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취향을 좋다, 나쁘다 어느 쪽으로도 평가해서는 안 돼요. 취향에 등급을 매기는 순간 자본에 기댄 폭력이 되니까요. 인스타그램에 나온 사진 속 모습만이 개인의 취향인 세상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나와 다름에 한결 관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타인의 취향>은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사장님’의 문화적 소양 부족을 비웃는 ‘문화귀족’을 거울처럼 비추며 취향 역시 얼마나 위계적인지를 보여준다. ‘중년의 취향’이란 것도 비웃음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패키지여행 깃발 주변에 모인 원색의 아웃도어족, 이어폰이 아닌 핸드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같은 것들 말이다. 노년의 취향은? 단춧구멍에 단추만 제대로 끼울 수 있어도 기적인데 무슨 놈의 취향!! 효도폰 등 단순하고도 손쉽기만 한 노인 전용 상품들이 많은 실패를 했음에도 노인들이 원하는 건 대문짝만한 글자와 팔다리가 잘 들어가면 그만인 옷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노년에 관한 매력적인 에세이집인 미국 시인 도널드 홀(1928~2018)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에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2011년 그는 국가예술훈장을 받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가 남는 시간에 국립미술관의 헨리 무어 전시를 보러 갔다. 산발한 백발에 휠체어를 타고 작품을 보는 그의 옆에 60대 경비가 다가와 조각가의 이름을 친절히 설명해줬다. 홀은 일찍이 무어에 관한 책을 한권 썼다. 전문가를 몰라봤다는 이유로 경비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의 친절에는 휠체어에 탄 노인은 당연히 무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깔려 있었던 셈이다. 심지어 그는 카페에서 나오는 홀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맘.마. 잘. 먹.었.어.요?”라고 말했다." "홀도 전시장에서 자신이 무어 전문가임을 알리지 않았다. 경비를 당황스럽게 만들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블로거와 아무 생각 없는 젊은이들의 작정한 조롱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급전직하의 실망스러운 결말”이라고 표현한 거 보면 꽤 상심했던 것 같다. 왜 아니겠나. 점잖은 노인들이 관대하다거나 인자하다는 이유로 상처 입지 않을 거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휠체어를 타고 행동이 느려진다고 해서 유모차의 아기처럼 “맘마꾸꾸”를 하는 건 아니란 말이다."
2020년 12월 26일 오전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