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 대기자의 '역설의 리더십'(7)] 자비보다 이익에 호소하라
중앙시사매거진
과거에 나의 적과 동맹을 맺은 상대와 자신을 도와줬던 상대. 이번 전쟁에서 둘 중 누구와 동맹을 맺을 것인가? 이 정보만 보면 후자를 골라야 할 것 같지만, 그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나의 목적은 무엇이고, 목적을 판단하기 위한 충분한 정보가 주어졌는가?'이다. 전쟁의 목적이 친분 유지라면 모르지만, 전쟁의 목적은 승리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닌 나의 목적에 맞는 기준 안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 결과 그리스의 선택은 이번 전쟁에서 나에게 더 큰 도움을 주는 상대였다. "사실 케르키라는 과거 아테네의 적과 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다. 케르키라의 사절은 이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이전에 아테네를 도운 일이 없고, 오히려 아테네의 적 편에 섰었음을 당당히 인정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이익이었다. 이번에는 아테네가 케르키라를 도와주면 서로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르키라는 아테네에 버금가는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둘이 힘을 모으면 아테네의 숙적인 스파르타를 위협할 만한 제해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케르키라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제안이었다. 코린트도 사절을 보냈다. 코린트 사절은 과거 코린트가 아테네를 도와줬던 사례들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아테네가 현재의 친구를 저버리고 과거의 적과 손을 잡으면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물었다. 신의를 우습게 아는 아테네와 관계를 끊을지도 모른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결론은 쉽게 났다. 아테네인들은 과거의 일에 얽매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코린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다고 해서 그리스 최강국인 아테네와 동맹을 끊을 만큼 배포가 있는 도시국가는 없다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케르키라는 이런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아테네인들에게 절실한 것은 현실적인 힘이지, 과거에 진 빚이 아니라는 점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11월 29일 오후 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