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라는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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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 회사 중 하나인데요. 하지만 픽사의 첫 장편 영화인 '토이 스토리'가 나오기 전까지 픽사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픽사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 에드 캣멀, 존 래세터, 이 3명은 모두 사회 생활을 하며 큰 상처를 받을 인물이기도 합니다. 관련해 픽사의 연대기를 잘 정리한 포스팅을 발견해 공유 드립니다. 1. 2004년 초, 픽사의 대표였던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4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픽사의 작품 배급을 희망하는 메이저 배급사가 4곳이나 된다고 밝혔다. 2. 당시는 픽사의 배급권을 갖고 있던 디즈니와의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는 시점이었고, 스티브 잡스는 (과감하게) 디즈니와의 계약 연장 협상을 중단할 것임을 발표했다. 3. 다음날 픽사의 주식을 3%가 올랐고, 디즈니의 주식은 2%가 떨어졌다. 스티브 잡스는 알고 있었다. 픽사가 이미 디즈니를 넘어섰다는 것을. 픽사가 디즈니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있다는 것을. 4. (안타깝지만) 디즈니 또한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디즈니는 자신들의 영화제작비의 45%가량을 픽사의 영화를 배급하면서 얻은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었다. 결국 디즈니는 내부 진통 끝에 스티브 잡스와 반목하던 마이클 아이스너를 해고하고, 스티브 잡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밥 아이거를 CEO 자리에 앉혔다. 5. 그렇게 픽사는 다시 디즈니가 마련한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본격적인 인수 합병 논의가 시작됐다. 6. 픽사를 인수한 디즈니가 픽사의 창작적 중추 역할을 했던 애니메이터 출신의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존 래세터를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업부의 수석 책임자로 임명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상 존 래세터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구원 투수나 다름없었다. 7. 여기서 아이러니한 지점은, 존 래세터가 디즈니에서 해고당했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8. 존 래세터는 디즈니가 설립한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일명 ‘칼아츠’를 수료한 뒤, 디즈니에 입사하며 꿈을 이루었지만,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 했고 끝내 해고당했다. 9. 상실감에 사로잡힌 그의 앞에 나타난 게 픽사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 에드 캣멀이었다. 에드 캣멀은 당시 보기 드물게 애니메이터로선 CG에 흥미를 지닌 존 래세터를 주목했고, 자신의 팀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들에게 부족했던 예술적 감각을 존 래세터가 채워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10. 에드 캣멀은 1970년대 초부터 CG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심취해 있었다. 당시에 이런 생각은 망상이나 헛소리에 가까웠는데, 그는 영리하게도 단순히 열정 만으로는 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고, 그렇게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가 이끄는 <루카스 필름> 산하의 그래픽 부서에 편입해 들어가며, 오래 걸릴 꿈에 시동을 걸었다. 11. 하지만 아내와의 이혼으로 거액의 위자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조지 루카스는 회사의 몇몇 부서를 매각하기로 했고, 에드 캣멀이 이끌던 그래픽 부서 역시 매물로 시장에 나왔다. 12.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는 CG가 새로운 미래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했고, 에드 캣멀의 팀에 관심을 보였다. 13. 그렇게 모두 버림 받은 경험이 있었던 존 래세터, 에드 캣멀, 스티브 잡스는 “서로 배신하지 말자”, “우주를 놀라게 하자”고 약속했고, 14.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픽사는 비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들이 만든 픽사는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선을 긋는 대신, 그 선을 계속해서 뛰어넘음으로써 늘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자신들이 만든 그 애니메이션의 대사처럼. “무한한 공간, 그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
2019년 12월 12일 오전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