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저래 저녁과 술자리 호스트를 하다보니 어느정도 감이 생기는 것 같다.
1. 식당 예약은 필수다. 의외로 저녁자리 호스트인데 식당 예약을 안해놓고 사람부터 불러 모으는 사람이 있다. 예약을 꼭 하자.
2.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의 목적에 맞게 식당을 골라야 한다.
3. 식당 고민을 정말 많이해야 한다. 그냥 대충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것보다 조금 더 신경써야 한다. 대충 고르면 대충 고른티가 난다.
4. 2차와 3차 동선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들 모이는 이유가 꼭 가봐야하는 초대박 핫플레이스가 아닌 이상에 2차와 3차를 갈 것까지 고려해서 장소를 선택해야 한다. 그거 고려 안하면 막상 1차 끝나고 매우 뻘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5. 이왕이면 가본 곳 중 선택하는 것이 좋다.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은 상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6. 만약 처음 가는 식당을 선택했을 경우 메뉴판을 공부해야 한다. 가장 잘나가는 디시나 음식이 무엇인지, 술은 어떤 것을 팔고 가격대가 어느정도 인지, 콜키지를 한다면 가격이 얼마고 잔은 주는지 등등 세세하게 알아둘 필요가 있다.
7. 오너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라면 전화번호를 받아서 이것저것 논의를 할 수 있다. 조금 특별한 것을 부탁할 수도 있고 와인에 맞는 음식을 조율하는 경우도 있다.
8. 호스트가 술을 준비한다면 꼭 준비한 술에 대한 공부를 해두자. 왜 이 술을 선택했는지, 오늘 음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 술을 만드는 회사나 메이커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어느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누군가 물어봤을 때 말해주면 식사 자리를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9. 예산은 무한으로 풀어두지 말고 스스로 적정선을 잡고 준비하도록 하자. 의외로 제약이 있을 때 더 좋은 선택들을 하기 위해 조사를 하게 된다.
10. 예산은 미리 참석하는 사람들과 조율을 할 필요가 있다. 친한 사람끼리는 건너뛰기도 하지만 처음 참석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얼마정도 나올지 대략적으로 알려줘야 한다. 생각보다 사람이 음식과 술에 돈쓰는 수준이 달라서 꽤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11. 참석자의 취향을 한명한명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소고기를 싫어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를 싫어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와인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소주를 좋아할 수도 있다. 이런걸 전체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저녁 식사자리는 공리주의적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 전체적인 만족도의 평균이 높아도 한 사람의 만족도가 0이라면 그건 좋은 저녁/술자리가 아니다. 전체 만족도 평균을 낮추는 한이 있어도 대다수가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12. 호스트는 어느정도 손해를 보는걸 감수해야만 한다. 실제로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도 많고 추가적으로 술을 가져가는 일 때문에 돈을 더 쓰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돈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13. 절대 노쇼를 하지 말고 "short seated covers"에 대한 개념도 알아둬야 한다. 예를 들면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서 3명이 앉으면 1 short-seated cover다. 6명이 가면 4명 테이블 2개를 붙여주니, 2 short-seated covers를 식당에서 기대하게 된다. 즉, 6명을 예약했는데 2명이 못온다면 전화해서 4명이 온다고 말해주는게 식당에게 도움이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2명자리를 붙여서 6명 자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8명에서 6명으로 참석인원이 줄었다면 그것 역시 말해줘야 한다. 비슷하게 4명에서 2명으로 변경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건 기본 매너 중 하나이고 이것만 잘 지켜도 종종 식당주인이 고맙다며 서비스를 준비해준다.
14. 호스트는 예약 시간 10~15분 일찍가는 걸 추천한다. 예를 들면 와인을 마시는 자리면 미리가서 와인도 칠링해놓고 그래야한다. 사람들이 한두명 오기 시작할 때 호스트가 맞이해주는게 낫다. 서로 친한사이면 상관없지만 종종 서로 모르는 사이인 경우도 있어서 꽤 중요하다로 할 수 있다.
15. 정산은 정확하게 하는편이 좋다. 근데 이건 항상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당장 자기전에 생가나는게 이정도다. 그리고 아마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물론 그냥 적당히 식당 예약하고 즐기는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근데 모든 저녁을 친구와, 지인과 함께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일 수도 있고 중요한 사람과 저녁을 함께 해야할 때도 있다. 그때는 위의 것들이 매우 중요해진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나이가 들수록 중요해진다. 당연히 엑셀 잘하고 문서 잘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런걸 잘 챙기는 것도 생각보다 꽤 큰 능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