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릭터(인물)로 브랜딩을 한다는 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01. 브랜딩을 할 때 한 사람의 페르소나나 캐릭터를 빌리는 것은 이제 매우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를 제대로 하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죠. 02. '브랜드에 인격을 부여하겠다', '브랜딩은 페르소나 매니지먼트다'라는 말은 참 쉽게들 꺼내지만 정작 그 브랜드를 감싸고 있는 몇몇 포인트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게 정말 같은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의 따로 국밥인 경우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03. 저는 '크리드(Creed)'라는 향수 브랜드를 참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향수야말로 브랜딩의 끝을 달리는 카테고리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제품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케이스로 된 용기를 벗어나는 순간은 무형의 물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데다 또 그것이 누구의 몸에, 어느 부위에, 심지어 어떤 체온에 닿느냐에 따라 아주 조금씩 향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04. '르 라보'나 '딥디크', '조 말론' 같은 트렌디한 향수 브랜드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제가 브랜드로서의 크리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인물(캐릭터)을 대하는 애티튜드 때문입니다. 갑자기 향수 얘기하다가 웬 캐릭터 타령이냐 싶으시겠지만 크리드만큼 오랫동안,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완벽에 가깝도록 한 인물을 브랜딩 한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05. 크리드를 요즘 브랜드로 알고 계시는 분도 많겠지만 사실 크리드는 250년이 훌쩍 넘는 전통의 향수 브랜드입니다. 심지어 1970년대에 이르러 대중화를 선언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개인 맞춤형 향수만을 제공한 브랜드이기도 했죠. 그들의 클라이언트는 나폴레옹 3세의 아내 유제니 황후를 비롯해 빅토리아 여왕, 오르세 백작, 엘리자베스 여왕, 그레이스 켈리, 오드리 헵번 같은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었습니다. 06. 크리드는 이들을 위한 향수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캐릭터를 집요하게 추출해냈습니다. 단순히 의뢰인이 좋아할 만한 향을 만들어내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생을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무엇을 지향하며 또 무엇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분석했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수백 가지가 넘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그 의뢰인의 주변 사람들까지도 탐문하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의 향수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죠. 07. 저는 특정한 카테고리에 이런 독보적인 브랜드들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음이 참 기쁩니다. 그들로 하여금 다른 브랜드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기준점을 세울 수도 있고 또 다른 분야에서는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지 확장 사례를 만들기도 좋기 때문이죠. 08. 저도 '페르소나'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좋아하지만, 누군가가 '우리 브랜드는 OOO의 인물에서 영감을 받았다'라는 말을 할 때면 슬그머니 크리드의 사례를 소개해주곤 합니다. 그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캐릭터를 추출한다는 것'에 대한 좋은 기준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 유용할 테니까 말이죠. 09. '뿌리면 공기로 흩어질 제품에 뭐 그렇게까지...' 싶으신가요?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스키보다 더 오래 향을 품고 있고, 옷이나 헤어스타일보다 타인에게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으며, 심지어 거리를 걷다가 누군가를 다시 뒤돌아보게 만드는 제품이 어디 흔할까요? 그리고 그런 제품이 누군가의 인생을 떠올리게 하도록 브랜딩 되어 있다면 한 번쯤은 들여다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한 사람의 캐릭터를 추출한다는 건 이토록 위대한 일이다

Brunch Story

한 사람의 캐릭터를 추출한다는 건 이토록 위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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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0일 오후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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