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칭찬하지 않는다고 피지 않는가? 칭찬이 없다고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떨어지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인정받지 않더라도 꽃은 꽃이고,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다. 고유한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건강을 지키려면 타인의 인정에 매달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힘든 세상을 칭찬 하나 없이 견뎌낼 만큼 강하지 않다. 요즘처럼 우울한 시대에 나도 모르는 나의 가치를 타인이 응원해준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다. 지치지 않으려면 ‘밥심’이 필요한 것처럼 칭찬도 규칙적으로 섭취해야 힘을 낼 수 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마음 속 깊이 간직된다. 부모님의 애정 어린 한 마디, 학창 시절 선생님의 격려는 스트레스받고 좌절할 때마다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라 용기를 북돋아준다. 칭찬은 내면화된다. 직원들의 기를 좀 살려주라고 말하면 “그러다 버릇 나빠진다”거나 “칭찬을 자꾸 해주니 나중에는 기어오르더라”며 손사래 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칭찬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제대로 된 칭찬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말을 잘 들으니 착하네”는 칭찬이 아니라 조종(manipulation)이다. 특정한 방향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려고 칭찬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명시적이면 칭찬은 돈처럼 보상(compensation)으로 기능한다. 조정과 보상으로 작동하는 건 허위 칭찬이다.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너는 그게 문제야”처럼 부정적인 말이 쉽게 튀어나온다. 타인을 향한 긍정의 표현은 부단히 노력해야만 자연스럽게 나온다. 칭찬에 인색한 사람은 막상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도 “무슨 말로 칭찬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막막함을 느낀다. 기껏해야 “잘했다, 훌륭하다, 대단하다”는 식상한 말만 내뱉는다. 상투적인 표현에는 울림이 없다. 막연한 찬사는 공치사나 아첨으로 들린다. 칭찬이 사실에 근거하고 표현이 생생하고 구체적이어야 상대의 마음에 닿는 것이다. 남다른 내용을 남다른 방식으로 칭찬하면, 그것을 듣는 사람 뿐만 아니라 말한 이 자신도 특별해지니 일석이조다. 칭찬의 기본을 지키자. “결과는 조금 아쉽지만 최선을 다하며 분투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처럼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자. 성과보다 잠재력을 치켜세우는 것도 좋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일을 마무리한 너의 근성이 돋보이더라”처럼 말이다. 당사자도 깨닫지 못한 장점을 찾아내어 말해주면 더 좋다. “짜증을 낼 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너의 모습이 보기 좋더라”고 말해주었더니, 정작 칭찬의 대상은 그때 찍은 사진을 본 후에야 ‘내게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하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세심하게 관찰하고 마음을 두루 살펴야 제대로 칭찬할 수 있다. “일할 때는 진중하고 식사 자리에서는 유쾌하게 분위기를 맞추고. 너는 못하는 게 없구나”처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종합적인 매력을 깨닫게 해주자. “솔직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네 모습을 보면 반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도 괜찮겠다. 타인을 향한 최고의 찬사는 그로 인해 내가 받은 감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신 덕택에 내가 행복해. 고마워”처럼 말이다. “네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가 뿌듯하구나”처럼 나의 느낌에 중심을 두는 게 가장 좋다. 평가와 판단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진짜 칭찬이다.

[김병수의마음치유] 진짜 칭찬

세계일보

[김병수의마음치유] 진짜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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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2일 오전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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