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이 항상 놓치는 핵심 한가지

세상은 분명히 공평한 부분이 있다. 똑똑한 사람들, 특히 교육 수준이 높은 먹물들이 항상 ‘스마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위대한 실행가들 중에서는 머리보다 몸을 먼저 움직였던 사람들, 고학력이 아니라 지혜를 자랑했던 사람들이 많다. 똑똑한 먹물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학문과 가까이 할수록, 사태를 복잡하고 정교하게 보고 정확한 언어에 담아야 한다고 배우게 된다. 명료함이나 비유와는 멀어지고, 전문용어와 난해한 언어와 가까워진다. 전문가에게 인정 받는 것이 준전문가와 전문가의 덕목이기 때문에, 똑똑한 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렵게 쓰고 말하게 되며 집단사고와 버블에 빠진다. 어려운 언어 중 반쯤은 사실 계급 계층적인 구별짓기이며, 전문가 집단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언어실천체계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공부하면서도 어려운 논문 하나 읽고 나면 ‘이 교수님 00이 정말로 싫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려운 언어보다 인간과 동기에 집중할 때 더 이해하기 쉬운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라이벌 학자를 정말 까고 싶었다던지. 어릴 때 지진을 경험해 파국의 경험을 자신의 작업에 담는 습관이 있다던지. 객관적인 지식인 척 하는 것들이 사실은 감정, 느낌, 개인적 동기에서 온 것들이 많다. 똑똑한 자는 자신이 똑똑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를 뽐내고 과시하거나, 더 똑똑한 자 앞에서는 사리면서 적당히 가고 싶어한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며 통탄하거나 인간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것도 이와 연결되는 현상이다. 한때 나도 쉬운 뉴스레터나 지대넓얕 같은 콘텐츠를 까면서 똑똑한 척을 해야 하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런데 콘텐츠 업계에서 일하면서 깨달았다. 명료함은 엄청난 가치다. 짧은 시간에 핵심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은 매우 가치롭다. 모 뉴스레터를 수십만명이 구독하고 있는 이유가 있는 거다. 스마트한 간결함을 추구하는 악시오스가 미디어 업계의 주요 레퍼런스가 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어떤 철학자는 설명이란 일종의 사회적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어려운 것을 쉽고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큰 사회적 함의를 가진다. 불평등을 넘어 진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료함은 자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명료하지 않고 난해하고 긴 메시지는 차별적이다. 먹물들만 읽으라고 써놓은 걸 팔수는 없다. 그건 서비스가 될 수 없다. 설명을 생각할 때, 나는 어두운 고궁을 청사초롱 한개 들고 함께 걸으며 친절히 안내하는 선미를 떠올린다. 똑똑한데 친절하고 설명도 잘한다. 아마 잘생겼고 스타일도 좋을 거다. 군더더기가 없이 핵심을 전달하는 설명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기에, 상대를 지식 성장의 여정으로 이끌기에 자비롭고 선하다. 똑똑한 사람은 명료함과 쉬움의 가치, 설명의 필요성을 자주 잊는다. 세상은 꽤나 평등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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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6일 오후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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