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 티끌, 탕진잼 다 지불해, 내버려둬 과소비 해버려도, 내일 아침 내가 미친 X처럼 내 적금을 깨버려도, WOO 내일은 없어” (BTS ‘고민보다 Go’ 중에서) BTS 노래 가사에 나오는 ‘탕진잼’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비에 관한 신조어는 끊임없이 계속 등장한다. ‘지름신’은 국어 사전에 소개된 지 오래고, 과소비로 텅 빈 통장을 의미하는 ‘텅장’, 스트레스 받은 김에 욕하듯 지르는 ‘X발 비용’, 비싼 물건을 사서 자랑하는 ‘플렉스’ 등 다양하다. 쇼핑이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쇼핑을 하면서 쾌감과 흥분을 느끼는 현상을 ‘쇼핑-하이(high)’라고 한다. 뇌에서 쾌락을 느끼는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쾌감의 지속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자주 쇼핑하고, 필요 없는 것도 사게 된다. 물건을 구매한 뒤에는 죄책감과 후회에 시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족들 몰래 쇼핑한 물건을 이곳 저곳에 숨겨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 이미 심각한 수준일지 모른다. 쇼핑중독은 정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이와 관련한 강박, 중독, 우울, 충동조절 장애 등 여러 병리적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개인의 성격 특성도 쇼핑에 영향을 미친다. 2014년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린 ‘강박구매 성향군의 기질 특성과 정서조절 능력’ 연구에 따르면, 쇼핑중독 성향이 있는 이들은 자극(쾌락)을 추구하고, 처벌이나 위험을 회피하지만, 인내력은 낮은 성향을 갖고 있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쇼핑으로 위안을 삼는다는 의미다. 국내외 여러 연구에서는 돈을 쓰면 슬픔, 우울, 긴장, 불안, 결핍 등에서 빠르게 벗어난다고 느끼기 때문에 쇼핑중독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한 마디로 비어 있는 마음을 물건으로 대신 채우는 것이다. 미국에서 2008년 발표된 <불행한 사람은 구두쇠가 아니다(Misery is not miserly)>라는 논문에서 이런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경영학부 신시아 크라이더 교수는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얼마나 돈을 많이 쓰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소년의 멘토가 죽는 장면이 나오는 슬픈 영화를 보여주고, 이 주제가 자신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글을 쓰도록 했다. 대조 그룹에는 물고기가 나오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일상에 대한 아무 이야기나 써보라고 했다. 그런 뒤 실험 참가비용으로 10달러를 주고, 연구팀에서 판매하는 물병 제품을 보여주며 얼마에 구매할 것인지 물었다. 죽음과 슬픔을 다룬 영상을 본 이들은 평균 2.11달러를 내겠다고 한 반면, 자연 다큐멘터리를 본 참가자들은 0.56달러를 내겠다고 답했다. 이 논문의 부제는 ‘슬프고,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이들은 돈을 더 쓴다’이다. 슬픈 영화를 보고 이를 자신의 문제와 결부시킨 그룹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면서 감정이 더 증폭됐다. 이는 슬픔과 우울에서 벗어나 보상받고 싶은 심리로 이어져 물건을 사는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결정을 내렸다. 연구팀은 “이들은 슬픔으로 인해 낮아진 자아를 끌어올리기 위해 돈을 더 쓰는 경향이 있었다”며 “부정적 감정을 느끼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면 대조적으로 자신 이외의 다른 대상(물병)에는 더 높은 가치를 매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온라인 쇼핑은 더 중독적일 수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택배를 기다리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구매할 때보다 설렘과 흥분 정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택배를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먹이를 기다리는 원숭이의 마음과 비교해 살펴볼 수 있는 연구가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로버트 사폴스키 교수는 원숭이에게 어떤 조건에서 보상(음식)이 주어질 때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사폴스키 교수는 원숭이가 앞에 놓인 버튼을 10회 누르면 음식을 제공했다. 원숭이가 버튼을 누르고, 음식을 받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도파민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버튼을 누르는 동안 가장 많은 도파민이 분비됐다. 음식을 기다리면서 설렘과 기대가 쾌감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음식을 받는 순간에는 오히려 도파민 수치가 떨어졌다. 버튼 10회를 다 누르면 음식을 주는 대신, 랜덤하게 보상을 주면 도파민이 훨씬 많이 분비됐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음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흥분이 점점 더 고조된 탓이다. 온라인 쇼핑 택배를 받고 기뻐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자. 결제를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택배를 기다리다 문 앞에 택배가 도착해 뜯어보는 순간까지 흥분이 쭉 고조된다. 하지만 택배 개봉 이후에는 급격히 흥미가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상표도 뜯지 않은 채 옷장에 넣어두고 몇 년 뒤에 유물처럼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과도한 쇼핑은 슬픔, 우울, 결핍 등 부정적 감정이 표출되는 하나의 방식이다. 따라서 내면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행동을 고칠 수 있다. 미국의 쇼핑중독 치료 전문가인 에이프릴 벤슨 박사는 저서 <살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 아래 3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1️⃣쇼핑 욕구를 일으키는 진짜 감정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스트레스 받아서”가 아니라, 슬픔, 외로움, 분노, 지루함, 짜증, 거절감, 두려움, 부끄러움, 좌절 등 구체적 이유를 찾는 것이다. 2️⃣쇼핑으로 이런 감정을 해결 가능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벤슨 박사는 “어떤 물리적 상품도 정서적 구멍을 진정으로 채울 수는 없다”며 “최신 디지털 카메라나 신상 바지가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3️⃣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 유발 감정을 해결할 대안을 찾는 일이다. 외로움이나 우울감이 원인이라면 가까운 사람과 커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 있다. 불안감이 원인이라면 거품 목욕을 하거나,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등 정서적 휴식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벤슨 박사는 “쇼핑 쾌감은 즉각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에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는다”며 “충동에 저항하는 꾸준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탕진잼' 하셨다고요? 사실은 우울한 겁니다 [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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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8일 오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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