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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정의는 두 가지다. 첫째는 바둑/장기에서 수가 높은 사람. 둘째 어떤 분야에서 기술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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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생각했다. 고수는 고수구나. 앞의 고수는 위 정의의 전자고, 뒤는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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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이세돌, 이창호 이전 세대의 유명한 기사로 생각했다. 책을 읽고 놀랐다. 강건한 생각과 단단한 통찰이 있는 분이다. 그는 진정한 고수다. 고수에겐 늘 배울 점이 있다. 또 분야와 상관없이 모든 고수들은 통한다. 한 분야의 고수는 모든 분야의 고수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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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바둑 기사는 늘 골똘히 수를 생각한다. 차갑고 냉정하고 고독해 보인다. 하지만 승부 앞에서는 모두 사람이다. 어린 이세돌이 패배 후 소리 내어 울었다고 한다.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감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감정과 생각을 다루는 방법이 다른 결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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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바둑의 복기다. 승부가 결정된 이후에 마주 앉아서 둔 수를 다시 되짚는다. 반성이고 회고이다. 처절해 보이면서 쿨해 보인다. 바둑의 승부 후에 항상 복기를 하는 줄은 몰랐다. 승자도, 패자도 불편하다. 몇 시간을 머리를 맞대고 싸웠으니까. 그럼에도 그게 승자, 패자 모두에게 가장 효율적인 성장을 위한 회고라 그렇게 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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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생각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줬다. 맞다. 그보다 더 선명한 전달이 어디 있을까.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가진 사람들이 쓴 책들은 많다. 기대가 커서인지 보통 실망했다. 하지만 이런 깊이를 가진 책은 처음이다. 삶으로 증명한 자기 계발을 위한 책이다. 책 제목이 너무 적합하다. 정말 고수의 생각이 느껴졌다.
밑줄 친 문장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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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이 천국이 되느냐 지옥이 되느냐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이런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믿는다. 결국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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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에 몰려 있던 순간에 어떻게 그런 수를 생각해낼 수 있었나요?’ 나는 대답한다. 그건 나도 알 수 없다고. 나는 그저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내가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답을 찾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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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내게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없다. 집중하여 생각하면 반드시 답이 보인다. 심지어 내가 해결하지 문제조차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의외의 답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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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답이 없는 게 바둑인데 어떻게 너에게 답을 주겠느냐. 그 답은 너 스스로 찾아라. 답이 없지만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바둑이다. 선생이 헤매는 학생에게 답을 알려주는 건 아주 쉬운 해결책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학생은 그 답을 받아먹을 뿐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깨달음은 오직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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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생각의 과정은 어느 분야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바로 문제의식과 질문이다. 이 문제를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바로 문제의식과 질문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상식과 지식을 동원하여 반복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바로 창의성의 과정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끊임없이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질문해야 한다. 창의성의 기본적인 출발점은 바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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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은 아무나 가지 못한다. 그냥 열심히 한다고 다 가는 것도 아니고 실력이 좋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운도 있어야 하지만 인성과 인품도 따라줘야 한다. 특히 마음이 강해야 한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이 없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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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아픔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곤 한다. 뾰족한 수가 없다. 일어나서 마당을 왔다 갔다 걷든지, 책을 읽든지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렇게 며칠 애쓰다 보면 조금씩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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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현실에 불만을 갖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바로는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 최고의 환경이다. 불만을 갖고 환경 탓을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여기가 최선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지지 시작한다. 바둑은 지금 여기,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자리가 최선의 자리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모든 꿈의 출발은 ‘지금,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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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처럼 오만해지기 쉽다.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에고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쉽게 겸손함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선생은 그냥 선생이 아니고, 상사는 그냥 상사가 아니다. 그들은 나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고수는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길을 이미 지나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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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그만큼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많이 아는 사람은 강하다. 많이 알면 실수가 줄어들고 더 멀리 볼 수 있다. 따라서 최선의 수읽기는 열심히 공부하여 지식과 실력을 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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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의 의미는 성찰과 자기반성이다. 이것은 깊이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며 겸손과 인내를 요구한다. 프로 기사들이 품성이 좋은 이유는 어려서부터 복기를 통해 꾸준히 자아성찰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없이 짓밟히다 보면 나라는 존재는 우주에 무수히 많은 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열심히 노력해서 내 몫을 다하자고 생각할 뿐, 내가 대단하다는 자부심은 조금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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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복기는 낯설고 다소 낭만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머리를 마주하고 대국 내용을 되짚어본다니. 멋지지 않은가. 하지만 멋질 것도 없다. 우리가 복기를 하는 이유는 예의이기도 하지만, 그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승자는 기쁨에 들떠 있고 패자는 억울함과 분함 등 온갖 감정으로 괴롭다. 그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하게 복기를 하기란 사실 힘들다. 특히 패자가 된 날의 복기는 몇 곱절 더 힘들다. 그건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덤덤해 보이겠지만 속은 너무 따갑고 쓰라리다. 프로 바둑 기사들은 도인이 아니다. 그저 괜찮은 척하는 것일 뿐 전혀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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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승부를 내는 동시에 음악이나 회화와 같이 개성을 표현하는 엄연한 예술이야. 예술이라면 우리들이 보고 감동하는 독특하고 창조적인 차원의 세계가 무르녹아 있어야 해. 오직 이기기 위한 승부에 앞서서 자기표현에 충실한 바둑을 생각해야 해. 자네는 넘버원이니까 이제 그러한 임무가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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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기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그렇게 하며 살아야 하지? 다른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술이 개발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할 수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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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상처가 조금씩 추슬러져서 문을 열고 나와 세상과 다시 만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성공의 화려함만 본다.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밤을 지독한 고독에 갇혀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바둑 기사는 고독을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이다. 하소연할 수도 누군가와 나눌 수도 없다. 혼자 감당해야 하고 오히려 그 안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패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고독이라는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강자란 보다 훌륭하게 고독을 견디어낸 사람이다. 고독할수록 자유롭고 고독할수록 강하다. 우리는 더 많이 혼자 있고 더 많이 외로워야 한다. 더 많이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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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승리가 아닌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내 삶을 이끌어줬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자신만의 도를 치열하고 끈질기게 나아가는 것이다. 삶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진정 좋은 생각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부끄럽지만 내 인생을 이 책에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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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지금 내가 놓고 있는 한 판에 몰두하듯, 내가 사는 하루하루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시길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