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어느 시골 마을. 가장 가까운 우물터는 걸어서 왕복 두시간 거리에 있었다. 당연히 동네 아낙네들은 매일 물을 긷기 위해 물동이를 이고 먼 길을 오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구호재단이 많은 비용을 들여 마을에 우물을 파주고 펌프를 설치해 주었다.


이제 아낙네들은 먼 길을 힘들게 오가지 않아도 된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 펌프는 몇 주가 지나도록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고 결국 녹슬어 버렸다. 어찌된 일일까?


논리적 관점에서 볼 때, 왕복 2시간 거리를 단 10분으로 줄여준 것은 (비용 역시 안 들었으니) ​합리적인 결과물이다. 동네 아낙네들의 고단한 일거리를 줄여준 셈이니 주민들에겐 더할 나위 없던 선물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구호재단이 몰랐던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그 시골마을은 대가족이 모여 사는 가부장적 공동체였으며, 며느리들이 물을 길으러 나서는 시간은 시부모와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 서로 친목을 다지는 소중한 자유시간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자유시간을 줄여버린 구호재단에 며느리들은 전혀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고객의 숨겨진 니즈를 알지 못한 해결책은 외면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디자이너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최근 몇 년은 필자의 사고방식 틀에 가장 큰 변화가 온 시기이다. 사실 20세기 초에 입사하여 빡세게 입문교육을 받을 때만 해도 가장 각광받는 인재는 논리적,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내는 인재였다.


그런 인재가 되기 위해 맥킨지의 로지컬 씽킹과 MECE 방식을 마르고 닳도록 연습하고 거시적 환경 분석으로 PEST(정치, 경제, 사회, 기술적 측면), 미시적 환경 분석으로 3C(고객, 경쟁사, 회사내부), 영업 및 마케팅환경 분석으로 4P(제품, 가격, 판매, 접근성)와 같은 비즈니스 분석법을 집요하게 교육받았던 기억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문제해결 과정에서 논리적 추론을 중요시 하는 편이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가장 달라진 점은 현재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과거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유사한 문제에 대한 해결과정을 참고하면 일처리 시간도 줄어들고 에너지도 아낄 수 있겠으나, 해결이 필요한 일 자체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경우가 많다.(쏟아지는 디지털 툴과 온라인화, 모바일화 되어가는 세상을 보라)


새로운 도전이 자못 반갑기도 하지만, 새로워도 너무 새롭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동료로서 디자이너​들과 함께 문제해결을 고민하는 과정은 분명 신선하다. 그들은 관리자적 관점이 아니라 고객(이용자)의 관점에서 의견을 던져준다.


’그 방식은 직원들이 좋아하지 않을거 같은데요.‘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거에요.‘ 이러한 피드백은 이전까지 안정적 운영과 논리적 완결도만을 우선시 했던 필자의 뇌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마치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를 쓸 때 느끼는 생소함과 어색함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런지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불확실성을 생각해 보면 (보스턴컨설팅그룹은 1955년에 비해 오늘날 업무 복잡성이 35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기존의 논리적 사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감을 알 수 있다.


토론토대 심리학교수 조던 피터슨은 ’질서‘를 놓고 ’사회구조가 잘 갖춰진 세계이고, 이미 탐험이 끝난 구역이자 친숙한 공간‘이라 했다. 더 이상 탐험을 할 필요 없는, 아니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 질서인 셈이다.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기존에 녹아들어 그들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신념이 질서를 보는 우리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혁신‘이라는 것의 단초가 무질서와 불안정, 그리고 결핍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해할 때, 팬데믹과 디지털의 파고로 휩쓸려가는 현실은 오히려 새로운 사상이 출현할 수 있는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잘 갖춰진 세계‘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무질서함을 인정하되 질서를 소구해야 한다.


진 리드카와 팀 오길비는 그들의 저서 <디자인씽킹, 경영을 바꾸다>에서 ‘비즈니스 씽킹’과 ‘디자인 씽킹’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논리적 추론과 합리적 결론을 통해 최고의 해답 하나를 내는 것이 ‘비즈니스 씽킹’이라면 우리가 한번쯤 들어봤을 ‘디자인 씽킹’은 더나은 해답을 향해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실험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비즈니스 씽킹’이 통제와 안정성을 추구하고 불확실성을 불편해하는 반면, ‘디자인씽킹’은 참신함을 추구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태를 싫어한다. 계획 세우는데 집중하기보다 ‘실행하기’에 중점을 두고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성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한다.


혁신의 요람으로 알려진 스탠포드대학의 D-School이나, 세계적인 혁신기업인 IDEO는 문제해결과정에서 남다른 결과물을 도출하는 자신만의 디자인씽킹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취합된 정보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도출한다. 그를 통해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시험을 거쳐 피드백을 받는다. 그리고 일정기간 반복 후 최종 적용에 이른다.


물론 중요한 것은 각 단계별 세부적인 액션방안일 것이다. 고객에게 양질의 편협되지 않은 정보를 얻기 위해 어떻게 질문을 던질 것이며, 취합된 정보에서 다른 여러 문제의 뿌리가 되는 핵심문제는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그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브레인스토밍 할 것인지 등의 디테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현실을 바꿔나가는 활동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혁신을 부르짖지 않는 기업은 없다. 허나 혁신은 초여름 소나기처럼 한번에 쏟아지지 않는다. 문제해결의 출발점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그리고 빠른 실행과 수정으로 최고안에 집착하기 보다 최선안을 도출하겠다는 자세로 결과물의 효과성을 높여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이 만든 결과물을 손에 건네줄 고객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고 Deep Dive 해보자. 당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 작지만 판을 바꿀 수 있는 해답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직장in] 논리적 사고만으로 살아가기가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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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in] 논리적 사고만으로 살아가기가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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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1일 오전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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