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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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람에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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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보고 진로를 고민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과는 없었다. 어디를 가야 할까. 내가 궁금해하는 걸 생각해 봤다. 내가 대학에서 더 배우고 싶은 게 뭘까. 난 뭘 더 알고 싶은가. 답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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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람이 궁금한데 어느 과를 가면 좋을까. 의대가 떠올랐다. 의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니까. 하지만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과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한 최적의 선택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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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민의 시간이 지나 컴퓨터 과학이 전공이 됐다. 오히려 사람과는 가장 반대편에 있는 선택지였다. 막상 대학에 가보니 인문학이 재밌어 보였다. 철학이나 사회학이 사람을 아는 데 도움이 될 법 싶었다. 교양수업이나 전공 청강도 해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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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해보니, 사람은 학문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인생과 삶 자체가 사람에 대한 배움의 연속일 뿐. 경영학을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경영학자가 되는 것처럼. 좋은 경영자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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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해 가장 궁금한 질문은 이거다. 과연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사람이 진짜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적인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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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결론은 둘 다 아닌 거 같다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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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논리에 설득되지 않는다. 논리는 참과 거짓, 승리와 패배가 있다. 분명하다. 또 객관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감정이고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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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로 상대를 깨부쉈다고 그 사람이 변할까. 나는 승리했고, 그는 패배했다. 그뿐이다. 그 승리감과 우월감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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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하며 산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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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의 주인공은 가끔 본인의 모습을 보며 놀란다. 내가 저렇게 행동한단 말이야. 스스로를 타자화해 보면 내가 아닌 것 같다.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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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드러난 의식 밑에는 보이지 않는 무의식이 있다. 우리를 조종하는 자동 조정장치다. 마치 영화 인셉션에서 돌고 있는 팽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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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을 바꾸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도파민만을 쫓는 요즘의 모습들을 보면 그 갭은 메꾸기엔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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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바꾸는 일에 매일 도전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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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비전을 가지고, 구성원을 설득하고, 고객을 설득한다. 투자자를 설득하고, 새로운 동료를 모은다. 이게 모든 스타트업이 하는 일이다. 사람을 변화시켜야만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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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화가 그러하다. 그 어떤 위대한 기업이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혹독한 시련과 무시와 멸시를 겪는다. 단언컨대 그런 과정이 없이 성공한 기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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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결국 돌고 돌아서 그 믿음을 스스로 깨부수고 증명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걸 부셔가면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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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한 이 길이 즐겁다. 때론 너무 고되고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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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일 오후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