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상했다고 해서 무조건 공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감이라는 단어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커다란 오해가 있다고 느낍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과정을 말하지요. 그런데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공감을 무조건적인 지지와 동의어로 여기곤 합니다.


내가 힘들 때 다른 사람들은 귀 기울여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공감이 부족한 사람이고요. 이런 사람들에게, 공감이란 나의 감정 상태에 대한 이해보다는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받는 과정에 더 가깝습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내 기분에 어긋나지 않아야 적절한 공감’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던 시절에는 자신과 상대방의 심리적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상처를 받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그 이후로 상대의 감정을 배려해야 할 필요성, 공감 능력에 대해 많은 강조가 이루어졌고요.


덕분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치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나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자리잡게 되었음을 미디어, 그리고 진료실에서 종종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 기분이라는 것은 사실 매우 주관적입니다. 날씨에 따라서도 바뀌고, 나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바뀝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바람직한 일이더라도 나에게 손해가 된다면 기분 이 나쁠 수 있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주관적인 것에 옳고 그름의 기준을 두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치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인간관계와 사회적인 상황에서 옳고 그름이 깔끔하게 나뉘는 상황은 드뭅니다. 그렇지만 정치적 또는 이념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많은 경우에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방향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상식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가치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적어도 이것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실, 상식이라는 것은 근거없이 추상적인 개념만은 아닙니다. 연구들을 참고해보면, 사람은 만 3세 무렵부터 특정 상황이 올바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들을 하기 시작하니까요.


이러한 상식과 같은 나름대로의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감정 상태와 같은 주관적 기분이 판단의 기준이 되기 시작하면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사람은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 게 자신을 비추면서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성숙해집니다. 내가 마주하는 수많은 타인의 입장, 사회적 상식들이 나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되어 줍니다.


그런데 감정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는 이런 객관성이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사람들은 내 행동이 객관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성찰할 기회를 잃습니다. 내 기분이 나쁘면 나쁜 것, 내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니까요.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공감과 옳고 그름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의 주관적인 아픔과 감정 상태는 이해받아야 하고, 바로 이것이 공감입니다.


행동이 바람직했는지 아닌지를 논해야 할 때가 있지만, 이때의 기준이 개인의 주관적인 기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무엇보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의 정신 건강을 위한 일입니다.


객관성을 상실하고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기준이 흔들리는 것은 인격의 성숙을 가로막고, 나아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상했더라도, 그것이 당신이 무조건 지지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상했다고 무조건 공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학신문

마음이 상했다고 무조건 공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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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4일 오후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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