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력 4-5년차 '중니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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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습 곡선에는 같은 패턴이 있다. 어떤 분야의 초보자가 있다고 하자. 이제 몇 가지 지식을 배운다. 그럼 마치 그 분야를 완전히 이해한 것처럼 느낀다. 누구나 0점에서 80점까지는 쉽다. 문제는 80점부터다. 전문가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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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자신감이 최고를 찌르는 때가 있다. 보통 4-5년 차다. 어떤 영역에서 경험을 쌓고 역량도 생겼다. 요즘의 중니어 단계다. 주니어는 지났고, 아직 시니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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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니어는 어떤 일을 맡아도 해낼 자신감이 충만하다. 그래서 내 생각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나 그게 내 윗 사람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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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 역시 그랬다. 정말 기고만장했다. 그저 내 생각이 옳다 믿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원망했다. 고집불통이었다. 타협할 줄 몰랐다. 의욕은 많았지만, 그만큼 좌절도 많이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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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나 자신의 한계를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아는지는 알았지만,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는 몰랐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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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게 따뜻한 조언을 해주던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분들은 알고 있었을거다. 기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똑같은 시간을 먼저 지나갔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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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그분들의 입장이 됐다. 그때의 나 같은 친구들을 많이 본다. 난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까. 굳이 괜한 오지랖은 아닐까. 늘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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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김범석 의장이 생각난다. 지난 분기 쿠팡의 매출은 10조를 찍었다. 10년 전 쿠팡에서 내가 본 그의 모습은 지금의 훌쩍 뛴 실적처럼 너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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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쿠팡에 PO는 많지 않았다. 그는 직접 PO 미팅에 참석하고 함께 이야길 나눴다. 사무실 책상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비전을 외쳤다. 오픈마켓과 다른 쿠팡의 전략을 사내에 전파했다. 개발자 채용을 위해 다음 본사가 있던 제주도로 직접 날아갔다. 타운홀 미팅의 완성도를 위해 스티브 잡스처럼 수없는 리허설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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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는 똑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이다. 10년은 길다. 그도 변했다. 변하지 않은 건, 10년 전에도 그가 한결같이 외쳤던 비전이다. 10년전 그는 ‘모든 사람이 쿠팡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목이 쉬게 외쳤다. 그때는 모두가 반신반의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그 비전은 정말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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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건 그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케일 할 수 없는 일을 직접 했다. 손에 직접 흙을 묻히며 구성원과 함께 고생했다. 이제 그는 나스닥 상장사의 의장이다. 그런 스마트한 사람으로써 10년전 경험은 마냥 쉽지 않은 일이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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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주기. 그게 4-5년 차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직접 보여주는 것으로 누군가는 배우거나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기억에는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직 기억하는 김범석 의장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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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아주 오래된 인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말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고. 시간이 꽤 지났다. 그 시간을 줄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기억해 주고 되새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큰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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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이해하고 깨닫는 걸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대신해줄 수는 없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수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대신 먼저 물을 마신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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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맘은 지금 당장은 보통 이해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누군가 지금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공감해 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후배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선배의 마음은 모두 같을거다. 지금의 서운함이 언젠가는 고마움으로 바뀐다는 믿음. 그게 선배로써의 진정한 바램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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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1일 오후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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