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리콘밸리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꿈의 회사'로 불리는 애플, 구글 등과 같은 기업의 사원증을 달고도 이들은 항상 사직서를 품고 회사를 다닌다는 점이다. K-직장인처럼.
2. (다만)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자신이 성장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3. 실리콘밸리에서는 커리어 개발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는 만큼, 이들은 자신을 꾸준히 성장시켜줄 곳을 찾는다. 아무리 보상이 크고, 회사 이름값이 좋더라도, 업무에서의 성장 기회가 적으면, 스타트업이라도 역량을 펼칠 만한 다른 곳으로 가는 식이다.
4. (그런데 이런 실리콘밸리에서) "저는 이 기업을 마지막 회사로 삼고 싶어요", "이 회사에서 은퇴하고 싶어요" 같은 말을 들었다. 그곳은 바로 엔비디아였다. 당시는 ChatGPT가 촉발한 생성형 AI 붐이 전 세계를 휩쓸기 이전이었다.
5. 그해 엔비디아는 미국의 커리어 플랫폼인 글래스도어가 선정하는 '전 세계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엔비디아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GPU 업계에서 1인자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과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의 온화한 인상이 그의 은발 머리카락과 잘 어울린다는 정도였다.
6. (특히) 2022년 하반기부터 (고물가로 인해) 빅테크 기업들은 과감히 칼을 뽑아들었다. 메타를 시작으로 '신의 직장'으로 꼽히던 구글까지 정리해고 바람이 몰아쳤다. 이때 갑작스러운 해고로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짐을 싸서 모국으로 돌아갔다.
7. 이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의 최소한의 안전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는 풍요의 시기에 일군 빅테크 기업의 정체성과 혁신이 낡은 것이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8. 예를 들어, 오늘날의 구글을 만든 자유로운 실험과 혁신의 상징이었던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와 룬샷 프로젝트 같은 것들은 모두 비용으로 인식되면서 자초됐다. 이 과정에서 구글을 비롯한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일하고 싶은 회사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그 틈 속에서 엔비디아는 거의 홀로 비상했다)
9. 엔비디아는 대기만성형 기업이다. 1993년에 창업해 PC 시대에 등장했지만, 성장에 한계가 있었고, 수차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리고 정체됐던 모바일 시대를 지나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진가를 본격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10. 말하자면, 엔비디아가 지난 30년 동안 쌓아온 것은 서퍼로서 (물이 들어올 때) 파도를 잘 타는 능력뿐 아니라, 좋지 않은 파도 속에서도 버티고 내실을 다지며 새로운 파도를 탐색하는 능력이었다.
11. 창업 10년 차였던 2003년 젠슨 황 CEO는, 스탠퍼드 대학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선택은 궁극적으로 '조직 문화'라는 하나의 버킷을 이루게 됩니다"
12. (약 20년 뒤인) 2024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젠슨 황 CEO는 이렇게 말했다. "엔비디아는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기업입니다"
13. 실제로 엔비디아는, 약 3만 명에 불과한 인원으로 인당 200만 달러(약 28억 원)가 넘는 생산성을 자랑하며, AI 컴퓨팅 분야에서 대안이 없는 절대 강자가 되고 있다.
14. 즉 엔비디아는, 현재 빅테크 기업 중 가장 적은 수의 인원으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도 실리콘밸리 인재들이 자신의 커리어 정점을 함께 하는 마지막 회사로 다니고 싶은 회사로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 정혜진, <더 라스트 컴퍼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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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6일 오전 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