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TV에서 본 장면이다. 눈보라 치는 날 차가운 한강에 들어가서 교각의 안전을 점검하고 나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잠수사에게 리포터가 물었다. “강물이 이렇게 차고 거친데, 힘들지 않으세요?”


그러자 나이 지긋하신 그 분은 이렇게 답했다. “네에, 직업입니다.” 그리고 다른 군더더기 말은 없었다.


별것 아닌 그 한마디가 필자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그 분이 “시민의 안전을 위한 사명감에서 하는 일이니 힘들지 않다”라든가 “제 한 몸 고생해서 안전이 확보된다면 힘들어도 좋다”라고 말했다면, 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리 기억에 남지는 않았으리라.


직업은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버는 일이다. 그러니 싫어도 해야 한다. 직업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관계를 맺으며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때론 보람이 있다.


직업으로 어떤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월등히 잘하게 된다. 그러니 자존감의 단단한 원천이 된다. 결국 그 잠수사 분의 “직업입니다”라는 말에는 이런 요소들이 응축되어 있었을 것이다.


“저 찬물에 들어가는 게 왜 안 힘들겠니?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 들어간다. 그런데 그게 묘한 뿌듯함도 있단다. 그리고 당신은 못 들어가지? 난 전문가니까 좀 쉬었다가 또 들어갈 거야.”


직업인에 대한 신뢰는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우리가 생면부지의 버스 기사에게 매일매일 신체의 안전을 맡기고, 원천징수를 하는 거래처 직원에게 각종 개인정보를 내놓고, 식당 주인이 주는 음식을 넙죽넙죽 받아먹는 것은 다 그들이 직업인으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운전자의 과실과 개인정보의 남용과 비위생적인 조리를 처벌하는 법규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런 법규의 존재 이전에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직업윤리를 먼저 신뢰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직업입니다”라는 말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무엇일까? “더 많이 일해서 부자 되세요”라든가 “어차피 돈도 안 되는데 쉬엄쉬엄하세요”와 같은 답은 이상하다.


역시 가장 적절한 답은 “감사합니다”일 것이다. “힘드시죠?” “직업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얼마나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답인가.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 상황에서 국민 여론은 의사들에게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환자를 내버려두고 대거 병원을 떠나버린 행태에 분노한다. 직업인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의사들, 특히 전쟁 같은 의료현장에서 몸을 혹사하며 가성비로는 세계 최고인 한국의 의료서비스를 유지해 온 젊은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무시되고 돈만 아는 족속으로 매도되는 것을 매우 억울해한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감정의 골이 한없이 깊어져 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입니다-감사합니다”라는 선순환의 회복이 아닐까. 준비되지 않은 당국의 급격한 정원 확대에 우려가 크더라도, 그래서 그것은 그것대로 다투면서 대안을 찾아가더라도, 일단 환자의 곁을 지키는 직업인의 자세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정부와 국민들은 조롱 대신 ‘감사합니다’라는 태도로 환영하는 것. 너무 나이브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일터에서 직업인인 우리들은 어차피 나이브한 신뢰와 나이브한 자존심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그 신뢰와 자존심의 불씨가 아예 꺼져버리기 전에 다시 잘 살려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직업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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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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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9일 오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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