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전달받을 때의 기쁨

01 . 벌써 6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요, 당시 제가 살던 동네에는 작은 김밥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미 프랜차이즈 김밥 가게는 물론이고 프리미엄 김밥이라 불리는 상품들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있던 때였는데 그래도 그 집은 여전히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메뉴들로 대여섯 가지의 김밥 만을 파는 곳이었죠. 하지만 동네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졌는지 갈 때마다 한 번도 가게에 손님이 없던 적은 없었습니다. 늘 누군가는 김밥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맛 또한 충분히 훌륭했고요.


02 . 가게를 운영하시는 주인 부부 역시도 언제나 상냥한 톤으로 말을 걸어주시는 분들이었는데 어느 날 하루는 제가 방문했을 때 두 분이 서로 뭔가 열심히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남자 사장님께서 A4 용지에다 매직펜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계시는 중이었고 여자 사장님은 김밥을 싸는 와중에도 남편분을 향해 이런저런 디렉션(?)을 주고 계시더라고요. 김밥을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것도 없고 대체 뭘 그리 열중해서 쓰시나 싶어 궁금해진 탓에 슬쩍 눈길을 돌렸는데 그때 본 광경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03 . 그건 바로 가게 임시 휴무일을 고지하기 위한 안내문이었거든요. 아마도 사정이 생겨 며칠간 가게를 운영하지 못하시는 모양이었는데 이를 모르고 찾아온 손님들을 위해 가게 문 앞에 붙일 메시지를 쓰고 계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형식과 내용을 위해 두 분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었을 테고요.

솔직히 그때만 해도 속으로 '개인 사정으로 00/00~ 00/00까지 쉽니다'라고 쓰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여자 사장님께서 남편분께 하시는 말씀 속에서 저도 모르게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군요. (워딩 자체가 아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의미상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04 . "그래도 무엇 때문에 가게를 비우는지 설명해 줘야 손님들이 걱정하지 않을 거 같아요. 그냥 '휴가'라고만 쓰지 말고 아이 결혼식 때문에 외국에 나가야 한다고 꼭 써주세요.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문을 여는 때도 혹시 당일에 바로 수급하지 못하는 재료가 있을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한다는 문구도 추가해 주고요."


05 . 그제서야 왜 두 분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고 계신 지가 가늠이 되더라고요. 제 성격상 또 굳이 무슨 사정인지를 물어보는 편은 아니라서 그냥 추측밖에 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가게를 비우는 동안 찾아올 손님들에 대해 미안함을 표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셨을테고, 그래도 늘 가까이하는 분들인 만큼 그 사정을 조금이라도 상세히 설명하고 싶으셨을 것이며, 돌아와서 최대한 빨리 가게를 다시 열겠지만 그때 예상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해서는 그래도 불편을 겪지 않게 미리 알려두고자 하시는 의도였을 겁니다. 그러니 주인 부부께서 어떤 결론을 내려 메시지를 작성하시더라도 그 방향은 손님들을 향한 것임이 분명했죠.


06 . 뒤늦게 돌이켜보니 주인 부부께서는 늘 김밥을 건네주는 과정에서도 필요한 이야기를 꼭 친절히 전해주셨습니다. '시금치가 들어있으니 되도록 한두 시간 안에는 먹는 게 가장 좋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도 있었고, 여러 김밥을 한 번에 살 때면 '청양고추가 들어간 걸 먼저 먹으면 다른 김밥 맛이 좀 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라'는 안내도 잊지 않으셨죠. 그런데 그 말씀들이 김밥 맛 못지않게 담백하고 영양가 있어서 항상 인상적이었던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날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건 두 분만의 작은 가게 운영 철학이자 평사시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는 일에 관한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죠.


07 . 조금 긴 이야기를 했지만 오늘 제가 진짜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이거였습니다. 최근에는 태도나 소통에 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이런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의외로 필요한 부분만큼 적정선을 지키며 동시에 잘 전달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뭐 친절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만 굳이 친절할 필요가 없는 부분에서 과한 감정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고, 소통을 함에 있어서도 '저는 필요한 얘기 다 전달해 줬으니 나중에 가서 뭐라고 하지 마세요'라는 투로 모든 정보를 고객에게 떠미는 사례도 심심찮게 보게 되니까요. 필요한 것들을 필요한 만큼 전달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부분이죠.


08 . 저도 직업 특성상 누구에게 뭔가를 잘 커뮤니케이션해야 할 때가 있고, 당연히 저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뭔가를 파는 누군가로부터 커뮤니케이션을 전달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타인과의 소통법에 있어서 만큼은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는 법인데 그중에서도 제 마음을 흔드는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과하지 않게, 그렇지만 필요한 것들은 오해 없이 제대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태도는 어느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평소의 습관들이 쌓여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서우리만큼 중요하다고도 느꼈고요.


09 . 그 에피소드가 있고 난 후 며칠 뒤 가게 앞을 지나가다 문 앞에 정갈하게 쓴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가게 출입문뿐 아니라 건물 모퉁이 근처에도 안내문이 한 장 더 붙어있더라고요. 예측해보건대 출입문 앞까지 와서 발걸음을 돌리게 될 손님들을 생각해 조금이라도 불편을 줄여주고자 다른 접근 동선에도 안내문을 붙여둔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엔 정말 며칠간 가게를 닫아야 하는 사정과 더불어 담백하고도 예의 바른, (심지어 따뜻한) 사장님 부부의 메시지가 담겨있었죠. 그래서 여전히 '안내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분들이 쓰신 그 워딩과 내어주신 마음들이 자연스레 연상되기도 합니다.


10 . 물론 작은 가게니까 가능한 것이고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니 통용되는 문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 배워야 할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정보를 다 담은 노션 링크 하나를 던져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분히 배려한 다음 내가 먼저 알려줘야 하는 것들이 있고, 복붙한 인사말을 쿠션어처럼 사용하며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야 나을 테지만 그래도 때에 따라 때에 맞는 대화를 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으니까요, 나는 (혹은 우리는)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잘 전달하는 소통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체크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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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6일 오후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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