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한물갔다…기업 운영은 ‘재즈’처럼
magazine.hankyung.com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제까지 유효했던 기술이 하루아침에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기존의 경영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융합하고 협업해 새로운 창조를 이뤄내는 조직만 살아남을 수 있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커지고 변화가 훨씬 빨라진 시대에는 미리 계획해서 대처하는 방식보단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반응하는(sense and respond)’ 기업의 경쟁력이 더 높다. 그래서 잘 짜인 연극보다는 즉흥극 공연처럼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각본에 맞춰 미리 철저하게 연습하고 공연하는 일반적인 연극과 달리, 즉흥극은 각본 없이 대강의 줄거리만으로 현장 분위기에 따라 수시로 흐름이 바뀐다. 즉흥극은 대본 없이 상황에 맞춰 공연 한다는 점에서 불확실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기업과 공통점이 많다.
2014년 타계한 리더십의 권위자 워런 베니스는 “과거의 조직 운영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과 같았지만, 오늘날은 재즈 같은 즉흥연주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며 혼돈의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재즈의 정신에서 혁신의 통찰력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책 <예스, 앤드(Yes, And)>는 미국의 즉흥 코미디 극단 세컨드시티가 축적한 즉흥극의 원리와 기법을 기업 경영에 접목했다. 매년 400개가 넘는 기업들은 이 극단에 컨설팅과 교육을 의뢰한다.
즉흥극은 한 배우가 어떤 연기를 하면 상대 배우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무언가를 더해 스토리를 전개한다. 이것이 즉흥극의 중심 원리 <예스, 앤드(Yes, And)>다.
즉흥극은 주인공이 따로 없는 경우가 많기에, 배우들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를 돋보이게 해주면 연극의 전체 질이 좋아지므로 결국 자신이 초라해지기보다 오히려 더 멋있게 보인다.
즉흥극은 관객 반응에 따라 극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관객과 함께 만드는 공동 창작 과정이다. 그래서 즉흥극을 잘하려면 창의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IDEO의 CEO 팀 브라운은 <예스, 앤드>가 창의적 사고방식의 핵심이라고 했다.
또 즉흥극을 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경청’을 잘해야 한다. 상대가 표현하는 바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듣고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창의성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지만, 제 아무리 창의적 제품이라고 해도 고객 의견을 경청하지 않으면 참담한 실패를 겪는다.
즉흥극을 잘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사고’ 또한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상하 관계의 핵심인 위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즉흥극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리더와 팔로워가 시시각각 바뀌는 리더십의 공유가 이뤄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윗사람이 아랫사람보다 지식이 부족할 수 있다. 때문에 계층에 상관없이 특정 사안에 대해 가장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이 일반화될 것이다. 앞서가는 기업들은 이미 프로젝트에 따라 리더가 수시로 임명되는 구조로 바꾸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자포스는 홀러크러시(holacracy)를 도입했다. 직원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서클’이라는 팀을 구성한다. 한 구성원은 A서클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B서클에서는 팔로워가 될 수도 있다.
멋진 공연을 하는 극단은 앙상블을 이룬다. ‘앙상블’은 완벽한 조화를 말한다. 팀이 앙상블을 이루면 개인 간의 차이를 상호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일할 때보다 더 좋은 성과가 나온다. 또한 유능한 개인들끼리 생각을 신속하게 교환하기 때문에 훌륭한 아이디어가 빠르게 도출돼 조직 전체의 창조성이 커지기도 한다.
앙상블은 구성원을 오래 머무르게 하는 유지 효과도 있다. 기업들도 개인적 역량보다 조화로운 팀원이 될 수 있는지를 더 중시하는 추세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구글의 자체 조사에서도 앙상블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앙상블이 조화로운 팀에서는 구성원들이 팀의 목표와 계획 및 자기 역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고, 위험을 감수해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맡은 업무를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제 시간에 해낸다.
또 즉흥극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정성을 발현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세컨드시티는 창조하기 위해, 자기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 반드시 실패하고 더 똑똑하게 실패하라고 제안한다. 공개적으로 실패하고 함께 실패하고 빨리 실패하고 실패해도 비난하지 말고 자신있게 발전적으로 실패하라고 조언한다.
뛰어난 기업들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구축돼 있다. 오늘날 가장 성공적인 기업의 하나로 여겨지는 아마존조차 수없이 많은 실패를 범했다. 다이슨도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덕에 5126개의 샘플을 제작했고 먼지봉투 없는 진공청소기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즉흥극에서도 실수와 실패가 누적되면 문제가 일어난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하려면 진정성 있게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 세컨드시티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불경스러운 말을 하도록 적극 권장한다.
상대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를 존중한다면 문제를 솔직하게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경외’의 대상이라면 문제를 짚어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초연결 사회가 심화되며 개방성과 투명성이 거세게 요구됨에 따라 기업은 숨을 곳이 거의 없어졌다. 문제가 발생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솔직하게 드러내고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도미노피자는 자사의 피자가 예전에는 맛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신메뉴 피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불해 주겠다고 광고했다. 이런 진정성 덕분에 매출이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즉흥극의 철학과 과정 그리고 문화는 현재와 미래의 조직을 이끌어 가는 리더들에게 참고할 만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유연하게 협업하고 소통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기술을 신속하게 융합해 창조적 솔루션을 만들어 내는 조직만이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을 것이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미 회원이신가요?
2025년 3월 11일 오후 1:32
A
... 더 보기1. 젠슨 황은 항상 뛰어난 학생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기란 쉽지 않았다.
퍼플렉시티는 세계 최대 검색 엔진 업체인 구글에 대항하는 AI 기반 검색 엔진으로 알려진 스타트업이다. 실시간으로 웹 기반 정보를 활용해 이용자 질문에 답변하는 AI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기업가치 140억 달러로 투자 유치를 마쳐 인수가 성사된다면 애플 역대 최대 인수가 될 전망이다.
... 더 보기구성원들이 의욕적으로 협력하고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팀과 조직이 있는 반면, 서로의 일에 무관심하고 타성과 매너리즘에 빠져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는 조직이 있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근본적으로 팀과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에너지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 더 보기진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