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고등학교 동창 몇몇을 만났을 때였다. 그 중 둘의 얼굴이 매우 어두웠다. 공교롭게도 그 날 직원들이 퇴사하겠다며 사표를 냈다고 했다. 청천벽력인 것 같았다. 자신들의 관리 책임으로 돌아올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어느 날 필자의 팀원이 사직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떠날 것이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창업이 꿈이었고 그만한 재력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한두 번 실패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건도 됐다.


그래서 나는 그의 새출발을 진심으로 격려했다. 팀에는 큰 손실이었고, 새 사람을 뽑는 것도 부담이었으나 ‘만나면 헤어지는 게 인생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뒤, 사무실에서 필자보다 직급이 꽤 높은 간부와 마주쳤다. 그는 “OO이 사직했다며? 네가 좀 잘해주지 그랬냐?”고 질책하듯 말했다.


필자는 당황했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누군가의 머리 속에는 그 팀원이 그만둔 게 내 탓이며, 내 리더십 부족의 증거로 각인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오래 전 만났던 제약사 부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 회사에서는 직원이 퇴사하면 부서장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했다. ‘직원은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관리자를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의 유명 경영대학원 교수들도 똑같은 말을 하곤 했다. ‘People don’t leave companies, they leave bad bosses.’ 직원들은 회사가 아니라 나쁜 보스를 떠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 팀원이 떠났으니 결국 나는 나쁜 보스라는 것인가? 그 말대로라면 나도 책임을 요구 받아야 하는가?


다행히도 최근 “NO”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했다. 좋은 리더든, 나쁜 보스든, 직원의 이직률 차이는 거의 없더라는 거였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 라비 가젠드란(Ravi S. Gajendran)과 디파크 소모야(Deepak Somaya)가 다국적 IT기업 직원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리더가 훌륭하든 나쁘든 상관 없이 직원은 비슷한 비율로 회사를 그만뒀다. 효과적인 리더십이 직원의 이직률을 낮추는 게 아닌 셈이었다. 필자는 드디어 그 팀원의 사직이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찾은 것이었다.


물론, 보스의 리더십과 팀원 이직률 간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나쁜 보스를 옹호하는 핑계 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 좋은 보스냐, 나쁜 보스냐에 따라 직원들이 기업에 갖는 애정과 충성도는 큰 차이를 보인다.


좋은 보스와 일하다가 이직한 직원은 이직해도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 되지만, 나쁜 보스와 일하다 떠난 직원은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가젠드란 교수에 따르면 좋은 리더의 직원들은 행복한 퇴사자(Happy Quitters)가 된다고 한다.


그 이유를 가젠드란은 이렇게 썼다. “직원을 돕는 좋은 관리자들은 직원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도전적인 과제를 맡기고 더 큰 책임을 지게 한다. 덕분에 직원은 다른 회사에서 뽑고 싶어하는 능력자가 된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더 나은 기회(더 높은 급여, 더 중요한 일 등)을 얻게 되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다.”


행복한 퇴사자들은 이직한 이후에도 옛 보스를 좋아할 뿐 아니라, 옛 직장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 역시 높았다. 가젠드란 교수에 따르면 “당신은 옛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가?“ ”당신은 남들에게 옛 직장 취업을 권하겠는가?“ ”당신은 옛 직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렇기에 이들 퇴사자들이 옛 기업에 가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고객으로서, 때로는 사업 파트너로서, 이전 직장에 소중한 비즈니스 기회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반대로 나쁜 보스와 함께 일한 직원들은 ‘불행한 퇴사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권한을 독점하는 나쁜 보스 밑에서 도전적인 과제를 맡을 기회를 부여 받지 못한다. 그저 보스가 시키는 일만 해야 하고, 때로는 인격모독을 당해야 한다. 당연히 일은 고통스럽고, 자기 능력을 키우지도 못한다. 유능한 직원이 될 확률이 점점 낮아진다.


그 결과, 이직 기회를 찾기 힘들어진다. 제안이 들어와도 급여나 직위가 높지 않다. 결국 나쁜 보스의 곁을 떠날 목적으로 이직을 선택한다. 당연히 이들은 옛 직장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옛 직장 취업을 말릴 것이고, 파트너 관계도 맺지 말라고 조언할 것이다. 이전 직장 입장에서는 큰 손실이다.


그날 밤, 나는 고교 동창들에게 가젠드란 교수의 조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직원들이 사표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고 얘기해주었다.


“당신이 좋은 리더라도 직원은 떠나게 돼 있어. 그게 인생사야. 어쩌면 당신이 직원들의 능력개발을 도와주었고, 덕분에 직원들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게 된 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그 직원이 이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다시 말해 그들이 ‘행복한 퇴사자’가 될 수 있다면 축하해야 할 일 같다”고 말했다.


필자 나이 40대 중반에 이르고, 직장생활을 만 18년 정도 하다 보니, 지인들 중에 회사를 한 두 차례 옮기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이직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이직 경험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본다. 한 곳에 장기간 머문다는 것이 성실함이 아니라 무능함의 증거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직을 한 사람들이 옛 직장, 옛 보스와 맺는 관계는 극과 극으로 다르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를 ‘졸업생’처럼 여기고 옛 보스를 동문 선배처럼 대한다. 연락을 주고 받고 종종 만나며 사업 기회를 상의한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옛 보스를 증오한다. 옛 보스가 만나자고 하면 콧방귀를 뀐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이 잡히면 취소할 핑계를 찾느라 안달한다.


당신은 어떤 리더에 해당되는가? 직장을 떠난 옛 직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를 돌이켜 보면, 당신이 좋은 보스인지 아니면 나쁜 보스인지 어느 정도는 가늠이 될 것 같다. 몇 년 전 필자의 곁을 떠났던 그 직원은 스스로를 ‘행복한 퇴사자’로 여겼을까?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좋은 리더도 직원 이직률 낮추진 못해:행복한 퇴사자 만들라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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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2일 오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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