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편의점 계산대의 가장 가까운 곳을 잠식한 하리보는 전 세계 1위 젤리 회사이다. 1920년에 창업해서 100년이 넘게 살아남은 회사의 스토리는 언제나 흥미롭다.
"하리보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10개국에 16개 공장을 두고 있다. 직원 수는 7000명, 2019년 매출은 3조6000억원이다. 젤리 제품만 1000여 종을 생산한다. 전 세계 제과 부문에서 매해 상위 10위에 랭크될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목록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2018년 미국 시장 구미 젤리 부문 판매 1위, 한국에서는 2016년 이후 매해 구미 젤리 부문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아들이 러시아의 전쟁 포로로 잡혀가고 창업자가 죽음을 맞았지만, 창업주의 아내 덕분에 하리보는 살아 남았다.
"하리보에도 전쟁의 상흔이 짙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하리보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직격탄을 맞았다. 직원들은 줄줄이 전쟁터로 끌려갔고 주 재료인 설탕 조달도 어려워졌다. 1945년 초 아버지 리겔은 52세로 사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맏아들 한스 리겔 주니어와 동생 파울 리겔이 러시아의 전쟁포로로 잡혀갔다. 하리보에 남은 직원은 30여 명에 불과했다.
니콜라이 카르푸조프 대표는 “가족기업의 장점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창업주 아내인 게르트루트 리겔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하리보의 첫 직원은 아내 게르트루트 리겔 부인이다. 1923년 자동차에 ‘하리보 간판’을 달고 운반하며 회사를 알리기 전까지 게르트루트 부인은 매일 자전거로 직접 배달할 만큼 열정적으로 회사를 도왔다. “남편이 사망하고 아들들이 전쟁포로로 잡혀간 상황에서도 하리보 사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게르트루트 부인은 전쟁 중에도 매달 집요하게 영국 군 기관에 하리보 생산 허용을 요청했고 마침내 제한적으로나마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념과 전략적인 방침이 사업의 공백을 메웠죠.”"
초콜릿이나 사탕 등 다른 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었지만, 젤리에 집중했다.
"하리보의 ‘한 우물 파기’는 잘 알려져 있다. 구미 젤리 외 다른 분야 사업은 하지 않는다. 사탕이나 초콜릿도 생산하지 않는다. 사업 다각화 계획을 묻자 카르푸조프 대표는 “우리는 구미 젤리에 집중해왔고, 지속적으로 젤리를 중심으로 다른 카테고리를 확장해갈 것이다”라며 “최고 품질을 유지하는 한 우리가 실현할 수 없는 트렌드를 무리해서 좇을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사실 4년 전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하리보 그룹의 매출은 견고하고 기복이 적은 편인데, 2017년 독일 내 하리보 매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당시 골드베렌보다 신제품 ‘저당 젤리’ 생산에 주력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리보는 재빨리 사업을 추스려 본연의 주력 제품에 집중했고 다시 제자리에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