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우선 영화 잘 봤고요.” - <GV 빌런 고태경> 정대건, 은행나무 📖 나는 관객으로서 두 가지 이유로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 GV)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 첫 번째 이유는 만족스러웠던 감상이 GV에서 깨져서 실망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별로였던 영화가 GV를 통해 좋아지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관객과의 대화를 좋아하시나요? 저도 학생 때는 종종 GV에 다녔는데요. 주로 GV용 영화(?)는 혼자 보러 다녔고 주변에 그런 데 열심인 친구도 없어서 이 ‘GV 빌런’이라는 것이 밈이 될 만큼 보편적이라는 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 2020 한경신춘문예 장편소설에 당선된 <GV 빌런 고태경>은 GV마다 출몰하는 빌런에게 렌즈를 가져다 대고 그의 일상과 삶을 쫓는 이야기예요. 📖 이 작은 방에 누워서 칠 년을, 식비를 아끼고 끼니를 때우며 식물처럼 살았을 거다. 지금 내 생활이 그랬다. 아직 일인분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초조함. 📖 실패한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주인공이자 화자인 조혜나는 첫 장편 영화의 흥행에 실패하고 소일거리를 하며 살아가는 서른 초반의 영화 감독입니다. 옥탑방 원룸에 누워, 고시에 낙방해 고향으로 돌아간 전 세입자의 심정을 헤아리고, 끝없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곱씹으며 제 몫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평범한 청춘이지요. 어느 날, 충무로에서 조금씩 뜨고 있는 배우인 전 남자친구의 소개로 GV에 참석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베레모를 쓴 한 중년 남성으로부터 날카로운 지적을 받습니다. 🧐 관객은 술렁이고 당황한 혜나는 “혹시 ‘눈새(눈치 없는 새끼)’라는 말 아세요?” 하고 받아치고, 그 모습은 고스란히 녹화되어 유튜브에 게시됩니다. 🗣 이거 목소리 들으니 딱 그 베레모 빌런이네. 💻 베레모 빌런 진성 시네필이야. 극장 공무원 수준으로 거의 365일 나타남. 안 보이는 적이 없음. 알고 보니 시네필 사이에서는 네임드 빌런이었던 베레모 선생님! 👨🏻‍🎨 혜나는 인터넷 댓글을 따라 베레모 선생님의 행적을 쫓던 중 그가 자신을 영화의 길로 이끈 ‘최애 영화’ <초록 사과🍏>의 조감독이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됩니다. 유명 감독 아래에서 입봉 근처까지 갔을 고태경이 몇 십 년 뒤 GV 빌런이 되어 극장을 전전하고 있다니. 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놓칠세라 고태경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하는 혜나. 🎥 📖 우리는 각자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잘하고 싶었는데,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콘티도 열심히 그렸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을 미워하게 될까. 📖 잘하고 싶었지만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내 능력에 대한 믿음이나 내가 확신하던 것들은 다 무너졌다. 열심히 했고 잘못한 일도 없는데 실패와 후회를 반복하는 인생. 성공이 언제나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잽싸게 달아나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값싼 냉소와 조롱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예요. 실제 영화 감독이기도 한 저자 이력 덕분에 작품 속 영화 업계나 현장 이야기가 무척 디테일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지는데요. (이 부분에서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떠오릅니다.) 경험에서 출발하는 작품의 장점도 분명하지만, 계속 비슷한 배경에 비슷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다른 작가들을 보면 조금 걱정스러워지기도... 하지만 기우겠죠? 차기작이 기대되는 작가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모든 준비생들과 지망생들,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 해낼 사람들이지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건 나에게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