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WAL, 걸 인 레드의 활동을 지원하는 파트너
한편, 노르웨이의 평범한 10대였던 걸 인 레드의 국제적인 성공을 이해하려면, AWAL이라는 유통사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여 년 간 디지털 환경 아래 점진적으로 진행된 음악 산업의 구조 변화를 상징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2016년,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화제가 된 걸 인 레드의 첫 싱글 "I Wanna Be Your Girlfriend"는 2018년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유통되었다. 당시 유통사가 AWAL이었다. 'Artists Without A Label'을 줄여서 AWAL인데, 그 이름 그대로 '레이블 없이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그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이런 방향성 덕분에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인 시장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AWAL은 1997년에 설립되었다.
보통의 레이블은 시장성을 알 수 없는 독립 아티스트나 신인 아티스트와 계약할 때 음원의 소유권(마스터에 대한 권리)을 요구한다. 이것이 레이블의 자산, 즉 카탈로그다. 그런데 AWAL은 마스터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일부 레이블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아티스트에게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 채널별 퍼블리싱 및 다양한 수익화에 대한 컨설팅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목표는 해당 아티스트 수익의 극대화다.
2011년 12월, AWAL은 코발트 뮤직 그룹에 인수되었다. 코발트 뮤직 그룹은 2000년에 설립된 유통사로, 아티스트에게 적절한 저작권료를 신속하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웠다. 그를 위해 2005년에는 아티스트가 직접 자신의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포털 서비스도 론칭했다. 코발트는 (2015년 기준으로) 영국 1위, 미국 2위의 독립 음악 유통사로서 약 60만 곡의 음악과 8,000여 명의 아티스트를 관리하는 것으로 기록되었다(와이어드).
2021년 2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코발트 뮤직 그룹을 인수했고, AWAL 역시 그 산하 조직으로 편성되었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이나 워너 뮤직 그룹과 달리, 음악의 부가 사업에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소니/ATV는 세계 최대의 음악 싱크(광고/드라마/영화/게임 등의 영상 콘텐츠에 삽입되는 음악의 부가 수익, '권리 사업'으로 볼 수 있다) 매출을 올린다.
이런 맥락에서 AWAL은 플랫폼 시대에 독립 아티스트의 활동을 지원하는 파트너에 가깝다. 아티스트에게 제공하는 주요 서비스는 디지털 음원의 유통 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 마케팅 지원, 라디오 및 싱크 라이센싱, 플레이리스트 프로모션, 유튜브 수익 창출, A&R과 제작비 투자도 포함된다. 스트리밍 수익에 있어서도 아티스트에게 80%를 지급하고 있다.
AWAL이 이렇게 '대안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이유는 뭘까?
일단, 새롭게 등장하는 신곡의 개수가 늘었다. 2002년 미국에서는 3만 장이 조금 넘는 앨범이 발매되었지만, 2020년에는 '스포티파이에서만' 180만장 이상의 앨범이 발매된다. 매일 업로드되는 신곡의 수는 6만 곡 이상이다.
바꿔 말하면 아티스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레이블이 아티스트의 마스터 권리를 가지는 것은 소수일지라도 크게 성공하는 아티스트가 꾸준히 등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 만 명씩 아티스트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런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다.
한편 음악을 전달하는 미디어가 늘었다. 텔레비전, 라디오, 음악 서비스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와 게임이 새로운 음악 유통 채널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가상 공간에서는 매우 다른 기준으로 사용자 그룹이 나눠질 수 있다. 연령, 장르가 아니라 게임 취향이나 선호하는 만화 캐릭터에 따라 소비하는 음악이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악은 앞으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되고 소비될 수 있다. 기존의 방식대로 유통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놓치게 된다. 기회비용이 늘어난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새로운 수익화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는 레이블과 계약할 이유는 없다. 아티스트의 핵심 자산인 마스터 권리를 원래 자리에 남겨두는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 채널을 만들고 수수료를 높이는 것은 레거시 아티스트에게도 매력적인 조건이 될 수 있다. 덕분에 AWAL은 더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수익모델을 갖게 된다.
걸 인 레드가 성공한 배경에도 이런 음악 산업의 구조 변화가 존재한다. 걸 인 레드의 입장에서는 굳이 레이블과 계약하느니 자신의 팀,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고 AWAL 같은 파트너와 협업하는 모델이 더 합리적이다. 걸 인 레드의 자체 레이블은 '월드 인 레드'로 이 브랜드를 통해 투어 티켓, 음원 안내, 굿즈 판매, 그리고 뉴스레터 등을 제공한다. 그의 레이블 홈페이지는, 대부분의 독립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아티스트 자사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