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당시, 포르쉐는 주머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80년대에 비해 연간 매출이 1/3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차량 제조 과정은 비효율적이었고 결함이 많았다.
새로 부임한 젊은 CEO는 포르쉐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걸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르쉐는 고객의 목소리를 들었다. 많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는 놀라웠다. 고객들이 SUV를 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다. 당시 SUV는 그리 멋진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어느새 부모가 되어 많은 짐을 싣을 수 있는 차에 아이들을 태워 이동하며 소소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차량 종류 뿐만 아니라 기능에 대해서도 고객들의 의견을 구했다. 생각보다 멋지지만 쓸모없는 기능이 많았다. 고객들은 포르쉐의 상징과 같은 6단 레이싱 변속기가 아니라, 더 큰 컵홀더를 원했다. 하지만 그들이 낸 돈의 많은 부분이 변속기 제작에 사용됐다는 것이 문제였다. 새 CEO는 비싸고 쓸모없는 이 기능을 없애기로 했다.
철저히 고객이 원하는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포르쉐의 첫 SUV가 바로 카이엔(Cayenne)이다. 포르쉐는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했지만, 덕분에 회사는 반등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뛰어난 기술력과 성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포르쉐가 했던 일을 어려운 말로 하면 ‘고객의 지불 용의’를 파악한 것이다. 그들은 각각의 기능을 탑재하기 전에 고객에게 물어봤다. ‘이 기능에 돈을 내시겠습니까?’ 고객이 No라고 대답하면 그 기능은 사라진다.
안타까운 점은 너무나 많은 회사가 지불용의를 무시하고 신제품을 출시한다는 것이다. CB인사이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70%가 3년 이내 폐업을 하는데, 그 원인으로는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서’가 1위를 차지했다.
핵심은 제품 설계 단계부터 고객의 ‘지불용의’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잘 파악하면 쉽게 제품을 설계하고, 디자인을 하고, 최적의 가격을 정할 수 있다. 최소한, 고객이 사지 않을 제품에 거금을 투자하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