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특별해' 자존감 중독 사회...'내 편 아니면 敵' 집단 자기애로 이어져"
Naver
“개인은 자존감 중독, 사회는 집단 나르시시즘…” 소설 <완전한 행복>의 정유정 작가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험한 징후로 ‘행복 강박’을 꼽았다. 내가 가장 ‘소중’하기에 빠른 ‘손절’이 일상이 된 나르시시즘의 시대. 마음을 지키기 위해, 균형을 잡기 위해 무엇을 재설정해야 할까. 1️⃣나르시시스트의 범죄를 그린 근작의 제목이 <완전한 행복>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SNS를 봐도 그렇고, 요즘 너무 이상하지 않나. 온통 행복을 이야기한다. 거의 강박 수준이다. 행복해야 하고, 자존감이 높아야 하고, 자기애가 충만해야만 하고…그게 맞는 걸까. 행복의 가치를 다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2️⃣행복을 다시 설정한다는 의미는? 🅰️행복은 순간의 경험일 뿐이다. 사실 인류는 행복하도록 진화된 게 아니라 생존하도록 진화됐다. 자기 삶을 충실히 산다는 의미의 ‘생존’이다. 인생을 성실히 수행하면 자존감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행복한 순간이 잠시 찾아온다. 그러니까 행복 자체는 목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3️⃣행복에 대한 강박이 나르시시즘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나르시시즘은 비뚤어진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뭘 해야 행복할까에 골몰하니 집착과 강박도 생기고…사회 전반에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는 건 위험한 일이다. 4️⃣사회 전반에서 나르시시즘을 느낀다고 했는데, 집단적으로도 그러한가? 🅰️나르시시즘이 ‘다이내믹 코리아’와 만나 독특한 풍경을 보여준다. 요즘 우리는 지나치게 분명한 것만 선호한다. 회색 지대에 있는 사람을 용인하지 못한다.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성향이 강하고,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한다. ‘내로남불’. 그게 바로 집단 나르시시즘이다. 5️⃣한국사회의 집단 나르시시즘에서 특히 우려되는 건 무엇인가? 🅰️자기애적 현상은 전 세계으로 감지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히 관찰되는 건 세대 간, 남녀 간, 계층 간 갈등이다. 나와 똑같지 않다고, 반대 편은 아니다. 토론과 대화를 통해 조금은 같이 묶일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하는데, 우린 사람을 자꾸 발라낸다. 대화하면 할수록 갈등이 더 생긴다. 저것이 다르고, 이것이 다르다는 식으로 자꾸 나누니까. 6️⃣자존감과 자기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어려운 것 같다. 🅰️진정한 자기애는 내가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해야 생긴다. 결점, 단점, 흑역사도 나라는 걸 받아들여야 생긴다. 자존감은 성취가 있어야 한다. 남들은 비웃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한 발 한 발, 성실히 살고 있다는 작은 성취감이다. 인간은 완성형이 아니라 완성해 나가는 존재고, 자기애와 자존감은 그런 ‘과정’에서 생기는 거다. 7️⃣요즘 자기계발서들은 대부분 자존감을 키우라고 말하는데? 🅰️성실히 삶을 꾸리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자존감을 높이려고 하면 비뚤어진 자기애가 된다. 그런 말의 전제는 자존감이 높아야 좋고, 낮으면 안 좋다는 것인데, 그건 참 이상한 일이고, 그런 사회는 불편하다. 8️⃣그런데 자존감이 낮으면, 좀 의기소침해지지 않을까? 🅰️자신만만하고 눈치 안 보고 누가 비난해도 상처 안 받는 것. 그게 자존감이 높은 거라면 나는 정반대다. 상처 잘 받고, 결핍과 불운도 많다. 낮으면 낮은 대로 장점이 있으니까 시무룩할 이유는 없다. 자존감 낮은 이들 중에 섬세하고 감수성 풍부한 이들이 많다. 9️⃣행복이 목표가 아니라면, 가장 필요한 건 뭔가? 우린 어떤 가치가 필요한가? 🅰️자유의지다. 이게 없으면 삶에서 투쟁할 어떠한 동기도 부여되지 않는다. 🔟자유의지’는 어떻게 발현되나? 🅰️‘자유의지’는 자신을, 자기 삶을 이해하게 해주는 동력이다. 첫째, 사람이 구체적으로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아는 능력이고. 둘째, 그것을 이루거나 지키기 위해 평생토록, 성실하게 애쓰며 살 수 있는 힘이다.
2021년 11월 19일 오후 1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