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Zion.T)는 래퍼일까요? 보컬리스트일까요? 아니면 그냥 가수일까요? 우리는 이런 식의 구분을 많이 하고, 또 하기를 좋아합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속성들을 굳이 뭔가 하나로 규정하려는 버릇은 오히려 다양한 성격을 설명하지 못하고 하나의 속성으로만 편하게 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자이언티처럼요. 웹진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에서 자이언티는 스스로 보컬리스트도 가수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봐도 그렇지 않나요?) 단지 뿌리를 힙합에 두고 있다고 했죠. 처음엔 랩을 했다가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했고, 멜로디를 만들면서 여러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싱을 하게 되었고, 결국 힙합 R&B 중심의 그냥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기능적으로 무엇이라고 규정했다면 지금처럼 독특한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자신의 정체성은 규정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동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정해버린 것입니다. 자신이 내린 정의가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하고, 이 정체성이 상사나 동료들과 맞지 않으면 파열음을 내고 조직을 떠나기도 합니다. 노동법을 어기길 강요하는 방향으로 직원을 몰아부치는 그런 일에 동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제외하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규정할 때 ‘조금 더’ 손을 내밀면 경력에 더 화려한 이력을 남길 수 있고 조직도 성장할 수 있는데, 그 ‘조금 더’를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는 참 애매한 단어입니다. 보통 결과물이 끝이 없는 기획 업무가 ‘조금 더’라는 이유로 야근과 특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듣기가 싫습니다. 회사의 규모가 작아서 다 해야 한다면 하기 싫어도 ‘조금 더’ 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들이 쌓여서 회사를 나가게 됩니다. 물론 맞지 않으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가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은 있습니다.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정의하는 것이지, 자신의 기능을 규정짓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기능으로 규정하면 시장의 변화에 따라 그 기능의 역할이 조정될 수 밖에 없을 때는 쓸모없는 기능이 되어 버립니다. 시장은 기존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데 늘 최선을 다합니다. 어려운 프로그래밍 또는 통계 프로그램은 언젠가는 쉬운 버전이 나와서 늘 진입 장벽이 낮아집니다. 예전에는 큰 장벽이었던 언어도 기술에 의해 해결되어 가고 있습니다. 기능은 늘 다른 기능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스스로 정한 바운더리는 오히려 자신에게 족쇄가 될 니다. 중요한 것은 기능적 관점으로 스스로의 영역을 제한하는 순간 거기서 성장이 멈춘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필연적으로 만나는 비전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애착을 갖는 것이 성장을 이루는 좋은 방법입니다. 현재 업무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든지, 연관된 업무에 대해 더 학습하든지 등 자신의 기능적인 한계를 스스로 무너뜨릴 때 희소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집니다. ‘자이언티’도 인터뷰에서 희소성이 자신을 키웠다고 말합니다. 시장은 늘 다음 단계를 준비함으로써 활력을 얻고, 새 단계의 시작 시점에는 희소성을 가진 사람이 주목받기 마련입니다.

나를 무엇이라 정의할 것인가

Brunch Story

나를 무엇이라 정의할 것인가

2021년 11월 25일 오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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