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의 퇴사를 마냥 욕해서는 안되는 이유 - 산업, 그리고 기업문화 변화의 관점에서
MZ세대의 이른 퇴사, 혹은 업무 완료 여부와 무관하게 시간 되면 퇴근하는 등등의 행동을 보고 혀를 차는 기성세대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히 걱정하고 욕할 문제가 아니라 관점을 좀 달리해야 할 것 같다. 산업과 기업문화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1.
먼저 제조업에 국한해서는 MZ 이후로 경쟁력이 낮아질 공산이 커보인다.
제조업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닦고 기름치고 조이며 일사분란하게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구성원 각각에게 일정 부분 자기 희생적 태도가 요구되는 산업이란 뜻인데 (예의나 덕목이 아니라 산업의 특성으로 인해 요구되는 일종의 '자질'이라는 의미)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현재 MZ가 보이는 성향은 제조업 분야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며 기성세대의 우려 또한 어느 정도 옳다고 볼 수 있다.
제조업 뿐만 아니라 노동 집약적이며 숙련도가 중요한 다양한 산업에서 비슷한 양상이 펼쳐질 것이다.
2.
하지만 나머지 분야에서 나타나는 MZ의 성향과 행동은 그저 회사와 구성원간의 거래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시그널일 뿐이다.
3.
예전에 직원은 '회사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가족같은 회사'라는 말이 2000년대 초반까지는 구직자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의미였음을 상기하자. 이 말인 즉슨, 공식적인 근로계약보다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친소관계가 더 중요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직원의 퍼포먼스가 저조하고 성과가 좀 안나와도 상사한테 욕은 먹을 지언정 어지간하면 끌어안고 정년까지 함께 가는 분위기였다는 얘기도 된다.
4.
요즘 MZ세대 중에서도 이렇게 일할 사람은 많다. 회사 사람들끼리 서로 가깝고 가족같이 일하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예전에 비해 확실히 소수가 되었다.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대세가 되었고 이들을 붙잡는 방법은 더 높은 연봉, 더 나은 복지 / 비전 / 성장 가능성 뿐이다. 대기업은 물론이요, 덩치 큰 스타트업들이 테헤란로 한가운데 사무실 마련하고 월급 빵빵하게 주면서 재택근무 허용하는 것이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5.
그렇다면 받는 만큼 일하겠다는 MZ의 태도는 잘못된 것인가? 프리랜서에게 외주 맡길 때를 한 번 생각해보자.
담당자가 프리랜서 출근 시간 가지고 뭐라고 하나? 사무실 청소 상태를 지적하나? 복사기 못 다룬다고 뭐라 그러나? 담당자가 프리랜서한테 일 시키면서 '일단 상황 돌아가는거 보고 필요한거 알아서 하세요'라고 맡겨두지도 않는다. (그런 담당자는 당장 쫓아내야 한다.) 업무의 목표, 수행 방법, 예상 아웃풋, 예산, 데드라인, 중간보고 일정, 보고 방법, 아웃풋 점검 및 QA, AS 등을 세세하게 결정하고 그 뒤에야 프리랜서에게 일을 맡긴다.
회사와 MZ의 관계 또한 앞으로 이런 형태가 될 것이다.
6.
물론 이런 관점에 따르자면 몇 가지 이슈가 발생한다.
A. 주니어를 데리고 숙련도를 높여야 하는 산업은 답이 없다..
B. 인건비가 상승한다.
C. 프리랜서에게 업무를 맡길 '담당자'는 조직에 헌신적인 사람이여야 한다.
7. [이슈 A] 주니어의 숙련도를 높여야 하는 경우
안타깝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게 맞다. 유럽과 미국의 인건비가 괜히 비싸진 것 아니니 어쩔 수 없다. 만약 이런 트렌드를 못쫓아가면 그 산업은 사양산업이 되는거다. 섬유나 봉제 산업의 전철을 밟게 되는 셈이다.
너무 쉽게 단언한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사회 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10년차까지 내 업무의 상당 부분이 바로 사양산업의 구조 조정이었다.
산업의 변화는 대표와 구성원의 노력, 경험, 역량과는 무관하게 아주 가혹하게 일어난다. 개미가 아무리 막아서도 수레바퀴는 굴러가는 것이다. 1~20년 전까지만 해도 음식 배달일은 공교육을 중퇴한 어린 친구에게 숙식 제공하면서 주방 일 가르치고 동시에 배달까지 시키면서 월급 30만원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자리를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전문 업체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라이더 업체 외주를 통해 새벽에 배송되는 형태가 대신하고 있다.
사회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소득이 높아진다는 건 이런 뜻이다. 이렇게 높아진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했을 때 소비자가 발길을 끊으면 그 사업은, 그리고 그 산업은 경쟁력이 없는거다. 왜 제조업체들이 중국, 동남아, 남미로 떠났었고, 왜 요즘 가장 핫한 AI 업체가 동영상 및 목소리 자동 제작이며, 배달비가 1만원에 육박하는지 잘 생각해보자.
8. [이슈 B] 인건비 상승 문제
인건비는 점점 높아진다. 대신에 회사와 함께 동고동락할 인력은 줄어들고 업무에 따라, 필요에 따라 비용을 들여 인력을 쓰면 된다. 사무실 공간 줄이고 프리랜서와 일주일에 한 번 Zoom으로, 혹은 주변 스타벅스에서 미팅하며 업무를 조율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오버헤드를 줄이면 인건비 상승분은 감당 가능해진다. 공장을 가동할 최소한의 인력이 무조건 필요한 제조업이나 기계장치업종이 아닌 한, 비용 줄이겠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효율화 할 수 있다. CEO랍시고 혼자 쓰는 호텔 로비같은 사무실, 고급 세단, 전용 주차 공간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다고 직원 다 내보내고 프리랜서만 고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직원들에게 성과 외에는 다른 걸 요구하고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9. [이슈 C] 헌신적인 담당자 부족
프로젝트 리딩 역할을 맡을 최소한의 헌신적인 인력이 필요하다. '헌신'만 따질 것이라면 그나마 좀 찾을 수는 있다. 지금도 한 회사에서 5년 이상 다니려는 사람은 많다. 경영진이 토사구팽하지 않는 한 꾸준히 성실하게 일할 사람을 데려오면 될 일이다. 스펙이 다소 부족하고 창의성도 기대만큼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직의 근간을 이룰 중요한 인력들이다. 잘 케어하고 장기 근속에 대해 인정해줘야 한다.
프로젝트 리딩 역량을 갖춘 인력은 외부에서 비싸게 데려와야 한다.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주니어를 시니어로 성장시키는 것보다는 빠를 것이다. 이런 인력들은 업무에 필요한 사항과 아웃풋의 퀄리티에 대해 명확하게 요구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면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자. 성과를 못 낸다면 그냥 깔끔하게 이별하면 된다. 다만 프로젝트 리딩 인력이 프리랜서와 다른 점은 조직관리와 후배 양성까지 업무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2~3년짜리 바인딩 계약하고 밀도있게 업무를 수행하도록 드라이브를 걸자.
10.
MZ세대의 모토는 아무리봐도 independent 와 competitive 로 보인다. 서두에도 얘기한 것처럼 이걸 무작정 비난해서는 안된다. MZ의 특성은 인정하면서 independent but committed, 혹은 competitive but cooperative로 상황에 맞게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옛날같이 MZ 개인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성향과 행동은 받아들이되 일에서 필요한 성과를 못 만들면 쿨하게 바이바이 하면 된다. 동시에 조직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아야 한다.
MZ를 비난하며 예전 방식을 강요해봤자 꼰대소리만 들을 뿐이며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막으려 용쓰는 개미가 될 뿐이다.
[마무리]
다만 광고나 콘텐츠, 대면서비스와 같이 능력만큼이나 투입 시간 또한 중요한 업종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이 업무 완료 여부가 아니라 시간을 기준으로 일과 종료를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예의나 사회생활, 눈치같은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말이다.) 인건비 높은 고급인력과 숙련도, 성장속도 모두 낮은 인력의 조합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외의 분야에서 하는 야근, 특히 중견기업 이상 회사 사무직의 야근은 셋 중 하나다. 해당 기업이 산업 구조상 갑-을-병..중에서 병 이하일 경우, 그리고 경영진이 멍청한 경우, 마지막으로 대표가 그냥 꼰대인 경우다. 특히나 갑 or 을 회사에서 벌어지는 만성적인 야근은 경영진의 역량 부족이고 그런 경영진을 자리에 앉힌 이사회, 대표이사 또한 마찬가지인 셈이다.
[P.S.]
아, 하나 더. 인력을 뽑을 때는 자소서보다 더 객관적인 기준으로 뽑아야 한다. 농담이 아니라 임상심리사 같은 전문가를 면접 때 데려오는 기업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AI면접이나 인적성 검사는 약점이 많지만,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인 뒤에는 무서울 것이다.
진짜로 하나 더. 이 글을 읽는 MZ 분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사실 MZ 세대에게 더 무서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성과 외에는 관심 없는 조직에서 일해보면 고성과 조직이라는게 얼마나 무서운지 뼈져리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제 발로 나가도 남아 있는 입장에서는 마음 불편한데, 매일같이 잘려나가는 동료들을 보면 다음에는 누구 차례일지, 성과를 못내면 나는 어떻게 될지 등골이 서늘해진다. 규칙따위 1도 없다는 넷플릭스나 경력직 입사시 연봉 1.5배 올려준다는 모 국내 스타트업 같은 기업들을 너무 찬양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자유와 연봉을 보장해주는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