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부의 생산엔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어떤 사실을 '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알다'의 정의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은 익숙한 것, 모르는 것은 낯선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자주 보면 익숙해집니다. 반복하면 익숙해지는 것이지요. 익숙해지면 당연해집니다. 당연한 것은 내가 아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무언가를 배울 때 환경에 나를 노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팁입니다. 선거철에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비추려는 후보자들도 아마 이런 효과를 노리는 걸 겁니다. ​ ​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있을 때, 우리의 뇌는 처음 보는 것에 더 관심을 둡니다. 새로운 것이 내게 위험한지 아닌지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것은 명확합니다. 반면 익숙한 정보는 우선순위가 떨어집니다. 익숙함은 당연함이 됩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우리는 안다고 느낍니다. 그 안다는 것들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사실 당연히 여기는 것들 중에는 잘 모르고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 ​ 이 책은 자본주의를 이야기합니다. 나온 지 10년이 된 스테디셀러입니다. ‘자본주의’를 다룬 EBS 다큐멘터리 콘텐츠를 기반으로 합니다.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들었기에 텍스트만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내용은 화면을 곁들였습니다. 매우 큰 장점입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인지 책 전체는 컬러입니다.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읽는 사람을 배려한 이런 편집 덕분에 쉽게 느껴집니다. ​ 너무 당연한 것들을 잘 살펴보면 새삼스럽지만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나는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니까요. 내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이나 생각들로 당연한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막연하고 커다란 주제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게 만드는 중요하고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는 없습니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느낍니다. 책을 읽으며 잠시 멈춰 다시 들여다보고 생각해 봤습니다. 새삼스럽고 새롭게 느껴졌던 부분이 많았습니다. ​ ​ 책을 읽고 3가지를 느꼈습니다. ​ 1. 당연한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배움과 앎의 시작입니다. 무언가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진짜 아는 것입니다. 제대로 설명하고 알려줄 수 없다면 아직 더 공부하고 배워야 합니다. 책을 읽으며 막연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깨졌습니다. 익숙하고 당연하다는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다른 책들을 더 읽기 시작했습니다. ​ ​ 2. 너도 옳고, 너도 옳다. ​ 이 책은 명확하고 선명하게 비판적인 관점으로 자본주의를 바라봅니다. 그 관점으로 자본주의란 무엇인지, 어떻게 흘러왔고, 또 어떻게 가야 할지를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쓴 책이 아닙니다. 수십 명의 글로벌 석학들의 다양한 의견들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전개는 한 사람이 쓴 책처럼 느껴집니다. 그 까닭은 책의 시작이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일 겁니다. EBS에서 제작한 영향도 있겠지요.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합쳐졌지만, 하나의 목소리입니다. 그 색깔이 너무나도 선명했기에 다른 관점과 생각이 더 궁금해집니다. 다른 생각을 더 읽어보고 싶어진 이유입니다. ​ ​ 3.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책을 읽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처럼 재밌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건 2013년, 정확히 10년 전입니다. 2023년 지금은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모두 인플레이션을 이야기합니다. 책이 씌여진 10년 전에는 모두 디플레이션을 걱정합니다. 2012년 한미 FTA에 대한 우려들도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변하기에 10년은 긴 시간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놓고 보면 10년간 새로운 변화와 경험을 했습니다. 2013년 자본주의를 바라보던 하나의 관점을 2023년에 읽고 있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도 있고,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것도 분명히 있을겁니다. 금리가 출렁거리는 2023년을 10년 후에는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하게 될 지 궁금합니다. ​ ​ ​ ​ ​ —— ​ 1. 자본주의에 관한 우리 생각의 배경에는 ‘물가는 유동적이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물가는 오를 수도 있지만 내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해 크게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의 현실에서는 절대로 물가가 내려갈 수 없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비밀은 바로 ‘돈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돈의 양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물가가 오르게 된다. ‘물가가 오른다’는 말은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의 가격이 비싸졌다는 말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돈의 양이 많아지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 ​ 2. 돈이란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그 무언가가 아닌, 은행이 창조해 낸 결과물이다. 이렇게 있지도 않은 돈을 만들어내고 의도적으로 늘리는 이런 과정을 우리는 ‘신용창조’, ‘신용팽창’ 등의 용어로 부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돈이 생기는 과정은 무척 간단한 작업인 셈이다. 은행은 들어온 돈의 지급준비율만큼의 금액만 남겨두고 그저 대출자의 예금담보 계좌에 손으로 숫자를 ‘타이핑’만 하면 된다. ​ 은행이 하는 비즈니스는 아주 독특한 것이다. 대개의 비즈니스란 이미 만들어진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는 ‘존재하는 것’들이다. 만들어진 물건, 언제든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판다. 가상의 것을 부풀리고 주고받음으로써 현실의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 ​ ​ 3. 2008년 미국 금융위기 후 지금은 어떨까? 인플레이션 후에 디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누렸던 호황이라는 것이 진정한 돈이 아닌 빚으로 쌓아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계속해서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해서 만들어낸 돈이 아니다.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또다시 돈을 낳으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의 정해진 길을 걷고, 그것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디플레이션이라는 절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숙명이다. ​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은행은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 저신용자에게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보통의 기업에서도 상품이 계속해서 팔려야만 기업 활동이 유지된다. 은행의 상품이란 곧 대출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은행이라는 기업도 운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돈이 많아지자 신용 상태가 좋은 사람들은 더 이상 은행에서 대출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니 결국 은행은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계속해서 자신의 상품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 ​ ​ 4. 1971년은 달러가 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역사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미국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이는 거의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 조치를 통해서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고 원하는 대로 빚을 질 수 있게 되었다. 금의 보유량과 전혀 무관한 화폐 발행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마침내 금융업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진정한 명목화폐의 출현이고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 FRB는 미국 정부를 고객으로 하는 몇몇 이익집단들이 단단히 결합된 모임체일 뿐이다. 정부 예산을 쓰지 않으며, 정부 차원의 감시도 없다. 그들은 금이 없어도 되고 별도의 은행 거래 창구도 필요 없다. 미국 정부가 요청하면 돈을 찍어내 미국 정부에 달러를 빌려주고 거기에 따라서 이익을 얻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 바퀴와 더불이 이 FRB를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 ​ 5. ‘금융자본주의’라는 말은 노동력을 중심으로 하던 자본주의에서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일하면서 만들어내는 상품과 서비스가 부의 근원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실제 노동력이 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돈이 돈을 만드는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을 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바로 ‘투자’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투자라는 명복으로 수많은 돈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들어온다. 그래야 은행은 그 돈을 굴리면서 또 다른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 미국 정부는 1933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명백하게 분리한다는 ‘글라스-스티걸’ 법을 제정했다. 은행들이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도박’을 금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1999년 제정된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은 바로 그와 같은 법을 다시 폐지하고, 금융지주회사가 은행 외에 증권회사, 즉 투자회사를 둘 수 있게 했다. 다시 은행이 고객의 돈으로 투기할 수 있는 권리를 허가해 준 셈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금융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금융지주회사법’을 제정했다. 은행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투자은행을 설립했고, 고객들을 상대로 저축보다는 투자를 하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 ​ ​ 6. 어린이들은 당연히 부모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부모들은 비용과 이익을 분석하고 정말 마음에 드는지 돈을 쓸지 따져보지만, 어릴 때는 칭얼대고, 불평하고, 어른들을 조른다. 무언가 원하고 유혹을 느끼면 그대로 하는 경향이 더 많다. 때로 마케터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건 아이들 자신이 아니라 가족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다. ​ 자본주의는 소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과거에 소비라는 것은 그저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쌀을 사고, 옷이 해어져 입을 수 없게 되면 옷을 샀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차고 넘치는 자본주의의 생산품들이 다 소비될 수가 없다. 잉여생산물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회전이 되지 않으면 자본주의에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소비를 권장하는 것, 또는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첨단 기술과 첨단과학, 고도의 심리 기술, 그리고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가 필요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소비해 자본주의의 잉여생산물을 떠맡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 일반적으로 현금을 쓰면 뇌는 고통을 느낀다. 자신에게 있던 중요한 자산이 손실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드를 쓰면 뇌에서 고통을 느끼는 중추신경이 마비가 된다. 현금의 경우 돈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만, 카드를 쓸 때는 계산하면서 카드라는 물건을 줬다가 다시 되돌려 받기 때문에 우리 뇌가 착각하여 손실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뇌 활동을 보여주는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을 보면 현금보다 카드로 낼 때 고통이 덜하다고 한다. 결국 그만큼 죄책감도 덜해서 자꾸만 쓰게 되는 것이다. ​ ‘자본주의란 소비의 과학과 인간의 나약함이 만나는 것이다.’ ​ ​ ​ 7.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호황과 불황의 순환 또는 경기순환이다, 마르크스는 미래의 자본주의는 경기순환을 피할 수 없다고 했다. 호황이 오고 불황이 온다. 마르크스는 그 경기순환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주기가 짧아져 결국에는 자본주의 종말을 가져올 거라 생각했다. 경기순환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질 거라는 그의 예상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경기순환을 피할 수 없을 거라던 그의 생각은 옳았다. ​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이기심들이 모여서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서 시장경제를 잘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유로운 시장만이 개인과 국가를 부자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에서 딱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미스는 이 한 문장으로 그가 꿈꾸는 ‘완전한 자유시장 체제’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설명했다. ​ 가난한 자들에게 많은 연민을 느끼던 스미스는 그들을 돕는 최선의 길은 자유시장 경제라고 생각했고, 이를 강력하게 옹호했다. 또한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기 때문에 그 이기적인 행동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본주의’라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상은 ‘인간의 도덕적 범위 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 케인스 이전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원리를 설명하려고 했다. 즉, 미시경제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그 주체를 가계, 기업, 정부로 나눌 수 있다. 미시경제학은 가계와 기업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며 시장에서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설명한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 이후 세계를 지배한 경제학이었다. 따라서 국가는 그저 전쟁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야경국가 정도의 역할만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방임주의 국가관에서 국가는 시장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국방과 외교, 치안 등의 질서 유지 임무만 맡아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 그런데 케인스가 재무성에서 일할 때는 전 세계가 전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시장의 원리’만 가지고는 경제를 논하기가 힘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케인스는 시장의 원리를 넘어서 경제 전체를 봐야 한다는 거시경제학의 관점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거시경제학은 국민소득, 이자율, 환율 등 국가 전체와 세계에 관한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정부의 계획적인 정책으로 가계와 기업을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 하이에크의 주요 이론은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불완전한 지식에 기초한다. 가장 똑똑한 인간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한 부분일 뿐 상대적으로 무지하다. 이 기본적인 통찰에서 하이에크의 주요 이론이 나온다. 그의 주요 이론은 ‘계획자의 부족한 지식 때문에 중앙경제 계획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경쟁적인 과정에서 많은 의사결정자가 다양한 결정을 내리는 환경에서 의사결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노력하고 배우고 진화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결정이 옳고 어떤 결정이 실패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나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모든 의사결정을 하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실수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이에크의 사상은 소비에트연방 같은 대규모 중앙 계획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 ​ ​ 8. 빈곤은 자유재지만 매우 비싸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으면 돈이 많이 든다. 세금을 내지 않고 세금을 받기만 한다. 복지의 목적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지나서 생산적이 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부의 생산 엔진이다. 가난을 구제한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부인가? 무엇을 위한 부인가? 이는 도덕적인 질문이다. 부의 축적 윤리 외에 다른 윤리를 가져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이제 다시 윤리를 생각할 때이다.

[ 스타트업 책 리뷰 (52) ] 부의 생산엔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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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3일 오전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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