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관리나 업무관리 서비스들이 20여년전 벤처 시절부터 현재 스타트업 시절까지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정작 전체 시장을 흔들만한 서비스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괜찮다거나 신기하다 혹은 편리하다고 화제가 되는 서비스들은 꾸준히 나왔지만 이들 중 일부만 해당 서비스에 정착할 뿐 대부분은 유행에 따라 서비스를 갈아탄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매번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여전히 MS오피스의 그림자 안에 있다. (구글 정도를 언급할 수 있으나 기본적인 서비스 형태나 사용법은 누가 봐도 MS오피스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관성이 강해서 익숙한 서비스를 잘 바꾸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이런 현상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나 역시 일정과 업무관리, 거기에 일기쓰기를 다이어리와 수첩, 일기장으로 하다가 2010년 이후 순차적으로 컴퓨터와 스마트폰, 즉 디지털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넘어왔다. 이것저것 사람들이 편하다고 하는 새로 나온 것들도 꾸준히 시도해봤지만, 결국에는 지금처럼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관리툴들만 쓴다. 내가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디지털로 기록하고 남겨져 있고 디지털 정보라서 시간과 공간 상관없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디지털 세계로 왔다는 증거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정과 업무관리, 일기쓰기에 있어서 내 사고와 활동의 중심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에 있다. 관리 철학은 아날로그, 관리 방식은 디지털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관리 철학이 여전히 아날로그에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일정과 업무관리, 일기쓰기는 단순히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만 챙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디지털이 훨씬 더 편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단순한 사실이자 계획 혹은 결과에 불과하고, 그것들을 그 시간과 장소에서 해내기 위해서는 기록된 각 건들에 대해 우선순위화해야 하고 사전에 준비를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이나 협업이라면 거기에 맞춰서 생각도 정리하고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미리 고려해야 한다. 개인적 감상과 감정까지 담는 일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즉, 각 사건과 사람들은 일정에 적혀있는 그 이상의 맥락이 필요한데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일정에 맞춰 사실을 적으면서 머리 속으로 맥락을 복기하고 정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서비스들은 아직까지 그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 바쁘고 돈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똑똑한 '인간' 비서를 고용하는거다. 누구나 자신만의 비서를 쓸 수 있게 해주겠다는 서비스들은 비서의 역할을 일정과 업무관리를 정말 단순하게 정의하고 만만하게 본 것 뿐이다. 그렇다보니 정말 바쁘거나 각 일정 하나하나, 사람 한명한명을 귀하게 여기지만 비서를 고용할 형편은 안되는 사람들은(고용할 형편이 되도 자기가 직접 챙기는 사람도 많다) 아날로그로 기록하던 디지털로 기록하던 상관없이 아날로그적인 생각으로 관리하고 기록한다. 재미있는 현상은 지금까지 디지털 관리 툴 쓴다는 사람들이 약속을 까먹거나 실수하는 것은 종종 봤지만 아날로그로 관리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기록으로 남기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머리속에도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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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오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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