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가요? 저는 믿고 의지했던 가치들이 신선함을 잃어 더이상 통용되지 않을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런 일들을 처음 겪게 되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어 도망가고 싶어 집니다. 실제로 문턱에서 포기한 적도 많고 회복이 무척 길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한 선배가 “너 자꾸 도망치다 보면 버릇된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부적처럼 그 말이 따라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도망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한 글쓰기를 선택했습니다. 주지화(intellectualization) 심리가 발동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한순간에 내가 알던 가치나 믿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는 꽤 자주 발생합니다. 저와 같이 일한 분들은 하나같이 스마트하고 또 눈치도 빠르기 때문에 모르는 걸 아는 척해봤자 웃음거리만 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보니 무의식에 두 가지 원칙이 자연스레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제가 이런 생각을 갖기까지는 커리어 시작부터 7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오히려 솔직함이 멍청함보다 동료들의 신뢰를 덜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와르르 무너졌을 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어설프게 내 주장을 밀어붙이거나 역으로 타인을 공격했을 때 모든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은 기억이 납니다. 무너진 레고 더미로 빠르게 이전과 다른 모양의 성을 짓는다고 상상하는 것도 저한테는 무척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커리어를 이어간다는 건 결국 삶을 지속하는 것이기에 무척 어렵습니다. 만약 누군가 마법 같은 방법으로 내 커리어를 쉽게 해 줄 수 있다고 속삭여도 절대 믿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각자의 링에서 저마다의 이유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이유가 유사해 보이고 내가 해본 것 같아도 모두에게 통용되는 그런 룰은 없습니다. 오늘 아침 문 득 연차와 상관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커리어를 이어가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이 만드는 결과물이 세상을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