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음악에 대한 글.
• 주민회의에선 누군가 '이왕이면 자가 여부도 따져야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 말에 몇몇은 '자가'임을 항변하지만, 부녀회장은 "세상이 뒤집어졌고 이젠 위아래 없이 모두가 평등해졌다"고 말하며 그 의견을 묵살한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저기 있었다면 당장 쫓겨나 죽어버렸겠다고 절망하는 동시에 어쩌면 부녀회장은 전세나 반전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 제발 실거주 우선으로 해주세요.
• 윤수일의 "아파트"는 1982년에 발표된 곡이다. 이 노래는 윤수일 밴드 2집의 히트곡으로, 윤수일 밴드 2집은 그가 직접 일기획(=윤수일 기획)이란 회사를 차리고 음반을 기획, 제작한 뒤 서울음반을 통해 발매한 앨범이다. 이 내용은 신현준, 최지선, 김학선이 쓴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중 '1980 욕망의 장소'에 실린 윤수일과의 인터뷰에 자세히 적혀 있다.
• "장소란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물질적 환경이며 독특한 장소감을 형성한다. 장소는 불변적 구조가 아니라 가변적 과정이다. 어떤 장소를 볼 때는 내부만 아니라 외부도 봐야 하고, 뿌리(roots) 외에 경로(routes)도 봐야 한다. 만물이 그렇듯, 장소도 부단히 변동한다." | 신현준, [한국 팝의 고고학] 서문
• 2023년 현재, 아파트를 단지 세속적 욕망으로 치환하는 것은 그 맥락과 의미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이 선망하는 거의 유일한 핵심 자산이자 밀레니얼 및 제트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면서 베이비 부머의 욕망과 X세대의 향수를 반영하는 복잡한 대상이 된다. 이렇게 한국의 특수성과 보편성이 드라마틱하게 겹치는 장소가 아파트라면, 영화에 흐르는 윤수일의 "아파트" 또한 배경음악과 영화적 장치라는 맥락을 넘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정서가 교차되는 2023년이라는 시대적인 지점으로 거듭난다.
• 이 리메이크는 음악감독을 맡은 김해원이 편곡하고 연주했다. 보컬은 박지후, 영화에서 문혜원을 연기한 배우로, 아마 [벌새]의 은희로 가장 잘 알려졌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벌새]의 배경도 강남의 주공 아파트 단지였다) 영탁의 "아파트"가 저돌적이고 본능적이라면 박지후의 "아파트"는 염세적이고 공허하다. 전자는 돌진하고 후자는 응시한다. 미니멀한 기타 사운드에 세팅된 공간계 이펙트가 깊고 어두운 구덩이를 만들면 우리는 피할 도리 없이 그 심연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식이다. 김사월x김해원의 [비밀]에서도 매우 인상적이던 접근법이다.
트리비아: 알면 더 재미난 것들
1. 인트로에 등장하는 80년대 서울 아파트에 대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상은 엄태화 감독이 KBS [모던 코리아] 제작팀에게 요청해 이태웅 PD가 연출한 것이다.
2.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제작사는 클라이맥스스튜디오로, 2018년 레진스튜디오로 출범해 2021년 클라이맥스스튜디오로 사명을 변경해, 지금은 SLL(스튜디오 룰루랄라) 소속 레이블 중 하나다. 최근 제작한 작품은 넷플릭스의 시리즈 [지옥]과 [D.P], [정이] 등이 있다.
3. 공동제작사는 BH엔터테인먼트로 영화의 주연을 맡은 이병헌, 박보영, 박지후의 소속사다. 그외 소속 배우는 고수, 김고은, 박해수, 안소희, 정우, 유지태, 이지아, 한가인, 한지민, 한효주, 추자연 등이다. 2016년에 설립되었고 2018년에 카카오M이 100%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손자회사가 되었다.
4. 엄태화 감독은 엄태구 배우의 형이다. 엄태구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특별 출연으로 참여했다.
5. 황궁 아파트의 위치는 3호선 금호역 부근 산자락에 위치한 단지로 설정되었고, 민성(박서준)이 지진에 휩쓸리는 장소는 약수역 앞이라는 설정이다. 한편 드림팰리스는 역세권(혹은 더블 역세권)으로 설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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