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지난주 넷플릭스에 올라온 신작 다큐멘터리 ⟪베컴⟫을 감상하고 난 후기를 써봅니다. 사실 4부작 밖에 안되는 비교적 짧은 다큐멘터리지만 바쁜 일상을 쪼개 두 번이나 정주행 한 걸 보면 개인적으로는 꽤나 울림이 있었던 작품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02 .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화제가 되지 않고 조용조용하게 묻혀있지만 이 작품은 축구 선수로서의 베컴과 셀럽으로서의 베컴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베컴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언급하는 그 '역할 갈등'에 대한 한 인물의 고뇌와 실수와 극복과 성장이 모두 담겨있죠. 때문에 스포츠 스타를 다룬 여느 다큐멘터리보다 훨씬 흥미롭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03 . 작품에선 베컴의 인생을 둘러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아르헨티나 전에서 불거진 그 '운명의 발차기' 사건과 기적과도 같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래블 기록, 그리고 아버지처럼 따르던 퍼거슨 감독을 등지게 된 라커룸 축구화 사태까지 어쩌면 아름다운 기억만큼이나 고통의 시간들에 주목하고 있는 작품인지도 모릅니다.

04 .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컴⟫을 감상하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한 사람의 역사가 오롯이 자신의 역사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 완벽한 마무리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베컴 가족 외에도 등장만으로도 '와!'하게 만드는 인물들이 인터뷰이로 참여합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베컴과 그와 함께한 역사적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모두가 각자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시선으로 평가합니다. 때로는 당사자인 베컴과 특정 인터뷰이의 이견을 첨예하게 편집해 판단을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두죠.

05 . 더불어 30년여 년 전 사건을 끄집어 내면서도 어제 일처럼 아파하고 여전히 그에 대한 완성형 답을 내리지 못하는 베컴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어떤 때보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말이 새삼 위대하게 다가오죠. 저렇게 파란만장한 삶이 또 있을까 싶다가도 '그런 풍파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인물이구나'라는 생각이 교차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덕분에 저는 작품을 다 본 뒤 '인간 베컴'이 더 좋아졌고 그렇게 '인간 베컴'에 집중하며 2회차 감상을 이어간 것 같습니다.

06 .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마이클 영(Michael Young)'은 "누군가는 과거 속에 파묻혀 살고 누군가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기대 살지만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은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이 망할 영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할 시간이다"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어록으로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베컴이 발차기 퇴장 사건으로 국민 역적의 반열에 올랐을 때도 공개적으로 베컴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 인물이기도 하죠.

07 . 우리 역시 거의 매일 '협업', '커뮤니케이션', '역량', '성장'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그 무엇도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돌이켜보면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과 공유한 것이자 그들에게 빌려온 것들인 것이죠. 새삼 나의 뭔가가 다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내 인생 역시 협업의 결과물이자 조화의 연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굳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먼 곳에서 찾을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08 . 그러니 한 번쯤 이런 생각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떤 형태로든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 한 사건을 다큐멘터리의 에피소드로 만든다면, 그리고 그 사건과 나에 대해 증언해 줄 인터뷰이를 고른다면, 제작자가 던지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을 예상해 볼 수 있다면 그건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죠.

여전히 우리는 타인의 기억에 기대기도 하고 때로는 매듭짓지 못한 채 중요한 사건을 처박아 두겠지만 그 역시 우리의 인생임을 상기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힘을 조금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09 . "때로는 과거 속에 파묻혀도 살고 때로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당겨보려 애쓰지만 지금은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이 부족한 나 자신을 응원할 시간이다"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