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임금님이 있었다. 하루는 민정 시찰을 나갔다. 한 영감이 좌판에서 앵무새 3 마리를 팔고 있다. “영감! 이놈은 얼마인고?” 제일 왼쪽의 아주 씩씩하게 생긴 앵무새를 가리키면서 묻는다. “그놈은 2냥 합니다.” “왜 2냥이요?” “2개 국어를 합니다.”


가운데 있는 앵무새를 가리킨다. ”이놈은 얼마인고?“ ”그놈은 4냥입니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깃털이 아주 고운 앵무새다. “그래, 왜 4냥인가?“ ”4개 국어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임금은 제일 오른쪽의 세번째 앵무새 가격을 묻는다. 늙수그레한데다가 깃털마저 듬성듬성 빠진 놈이다. “폐하! 그놈은 좀 비쌉니다.” 임금님이 화를 내며 다그친다. “얼마냐니깐!” 야단을 맞고서야 영감은 8냥이라고 답한다. 자, 퀴즈 들어간다. 왜 영감은 세 번째 앵무새가 8냥이라고 말했을까?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1번 2번 앵무새는 제가 하는 말은 듣지 않아도 3번 앵무새가 하는 말은 무조건 듣습니다. 1번 2번 앵무새에게 외국어를 가르친 앵무새가 3번 앵무새입니다. 그리고 1 번 2번 앵무새를 낳아서 키운 어미 앵무새가 3번 앵무새이옵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은 결코 고리타분하고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군사부일체가 진리인 이유는 리더, 스승, 부모의 역할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멘토링이다. 멘토링과 컨설팅의 차이를 아는가? 그랬더니 어떤 분이 ‘돈’이라고 답한다. 물론 돈 차이도 난다. 하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컨설팅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래야 돈을 받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멘토링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끝까지 들어주는 거다. 그러면서 맞장구도 쳐줘라! 여러분은 소통의 달인이 될 것이다. 그럼 해결책은 누가 찾냐고? 본인이 스스로 찾는다.


말을 잘 들어주는 리더에게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막 하다보면, 자신의 내부에서 “아~그렇구나, 결국 나는 이렇게 해야겠다.”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리더 중에서 최고의 리더는 어떤 리더인가? 아니, 최악부터 말해보자. 최악의 리더는 자신의 직원과 경쟁하는 리더다. ”니가 내 자리를 넘봐? 어림없다.“ 이런 리더 밑에는 직원들이 몰려들지 않는다.


최고의 리더는 직원을 리더로 키워주는 리더다. 리더로 키워주는 방식에는 2가지가 있다. 점점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일을 맡기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러다가는 절대 일을 못 맡긴다.


또 다른 방법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학위를 딸 기회가 있다면 줘라. 일을 그르쳤을 때는 야단부터 칠 것이 아니다. 실패한 이유를 스스로 적어내라고 하라. 실패보고서를 같이 검토하고 평가해도 늦지 않다.


“리더 그릇의 크기는 자신보다 더 똑똑한 부하를 몇 명 두고 있는지를 보면 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하는 말이다. 예전에 기업 특강을 나갔을 때, 사장의 말 중에 내 귀에 뱅뱅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 조직은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상사를 능가하는 부하가 없는 조직의 한계는 뻔하다.


리더의 역할은 직원의 고충을 들어주고, 그들의 사기를 북돋는 격려를 끊임없이 해주는 것이다. 항상 직원들에게 겸손하게 물어 보라.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같이 의논하라.


미국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이 질문을 한다. 선생님은 답변 대신 이렇게 말한다. “자, 누가 이 문제에 대해서 답해 볼까?”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 볼 포인트는 선생님이 바로 답하려고 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에게 먼저 답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끝끝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아, 사실 이 문제는 우리 반에서 세르게이가 가장 잘 알고 있지. 다음 시간에 세르게이가 답해줘.”라고 말하면서 수업을 끝낸다. 사실 세르게이는 반에서 말썽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아이였지만, 그냥 무심코 그를 지목해버린 것이다.


어느 날 세르게이 엄마에게 면담신청이 왔다.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 교사가 된 햇병아리 선생님은 겁이 덜컥 났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왜 나를 보자고 하는 걸까?” 면담일이 다가올수록 선생님의 가슴은 더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면담날 세르게이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한달 전 수업에서 세르게이한테 무슨 말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왜냐면, 학교 갔다오면 가방 던져 놓고 하루 종일 놀던 애가 갑자기 도서관에 데려다 달라고 하더니,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선생님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아마 세르게이의 인생을 바꿔 놓은 듯 했다. 5살 때 유치원 선생님을 잘 만난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인생 살면서 더 많은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버드 교육대학원 보고서에 나온다.


부모가 자식에게 절대 하면 안되는 말이 있다. “너 왜 그랬어?“이다. 문장 구조를 분석해보자. 1️⃣문장의 주어가 you로 시작한다는 것은 ”나는 검사고, 너는 피의자“라는 뜻이다.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나의 의심을 완벽하게 지우기 전에 너는 일단 범죄자다.“라는 것이다.


2️⃣“왜”를 묻는 것은 원인을 따지겠다는 것이다. 뭐하러 원인을 규명하려고 할까? 당연히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것이다.


3️⃣시제가 과거다. 과거를 파겠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네 죄가 분명히 드러날 때까지!” 이런 식으로 부모가 자식을 다그치면 결국 돌아오는 답변은 전부 ’거짓말‘이다. 약자가 살아 남기 위해서 강자에게 사용하는 전략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사실왜곡이다. 안 그러면 죽으니까!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첫째도 성과, 둘째도 성과, 셋째도 성과”를 외치면 그 회사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성과가 올라갈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순진무구함을 넘어서서 무지한 리더다.


이제 그 회사에서는 성과조작이 만연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비윤리적이고 불법적 행위를 하는 직원들이 판을 칠 것이다. 결국 그 회사는 언젠가는 문제가 터져 나오게 예정되어 있는 시한폭탄이 된다.

[김형철의 인문학 리더십] 믿고 격려하고 들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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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0일 오전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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