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중독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01 . 숏폼 콘텐츠의 자극성에 비판을 가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가끔 숏폼 피드를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희한한 감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는 예능 프로에서 레전드 짤로 불리는 하이라이트를 보며 낄낄대다가 곧장 다음 콘텐츠를 넘기면 그때는 또 세상을 아주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법한 중요한 말들이 쏟아지거든요. 그렇게 축구 하이라이트를 지나 사람이 금성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과학 콘텐츠를 만날 때면 이제 어떤 감정으로 콘텐츠를 대해야 하는지 의아해질 때도 많기 때문이죠.


02 . 그중에서도 저는 요즘 동기부여에 관한 콘텐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참 고민입니다. 저 역시 책 읽는 걸 좋아하고 콘텐츠 보는 걸 즐기는 편이라 중요한 문장이나 의미 있게 다가온 장면들이 있으면 어떻게든 남겨두려고 하거든요.

특히 숏폼 콘텐츠가 뜨고 나서부터는 수많은 유명인들의 인터뷰에 큼지막한 자막을 입히고 웅장한 BGM을 깔아서 전달하는 게시물들이 늘어나다 보니 왠지 아주 특별하지 않은 내용도 꼭 저장을 해 둬야 할 것 같은 주요한 콘텐츠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도 없지 않습니다.


03 . 이상하다 싶었죠. 오히려 책을 읽으며 적당히 하이라이트하고, 기록하고, 때로는 필사를 해가며 얻은 인사이트들보다 훨씬 간편하고 임팩트 있게 마주할 수 있는 동기부여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정작 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 싶은 그 사실이 무척 궁금해진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과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들을 한 번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바로 명언 중독의 시대에 동기부여 콘텐츠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말이죠.


04 . 우선 저는 비타민의 역설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비타민은 우리 몸에 필요한 일정 수준의 양분으로 흡수되고 나면 초과분은 모두 몸 밖으로 배출되게 됩니다. 때문에 고함량의 비타민을 여러 번 복용한다고 해도 건강에 주는 이점은 딱히 없는 셈이죠.

그런데 저는 동기부여에 관한 콘텐츠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숏폼이든 아니면 다른 형태든 간에 좋은 말을 많이 스크랩해놓는 것이 주는 가장 큰 충족은 '내가 좋은 콘텐츠를 일단 저장해놨다'라는 순간의 자기만족이거든요. 때문에 나중에는 우리 몸밖으로 모두 흘러나가버릴 걸 잘 알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삼키고 보자'는 심리가 발동하는 겁니다.


05 .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또 취사선택의 마법을 부려야 합니다. 이전에도 글을 통해 '메모하는 것보다 정리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말을 전달한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이른바 '동기부여'로 분류되는 콘텐츠들을 보고 저장하더라도 되도록 일주일에 베스트(?) 콘텐츠 하나만을 골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다시 말해 정말 나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고, 두고두고 생각해도 맞는 말인 것 같고, 내 삶에서 내가 직접 실천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콘텐츠를 딱 하나만 선정해 보는 거죠. 그렇게 감히 '명언을 고른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동기부여 콘텐츠를 보는 눈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06 . 더불어 저는 어떤 콘텐츠를 보건 간에 결국 텍스트로 변환해서 정리해두려고 노력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콘텐츠는 늘 극적인 임팩트를 주는 연출이 담겨있으니까요, 그 효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 메시지라면, 그 메시지를 둘러싸고 있는 당의정 캡슐을 모두 녹여내고서 메시지 그 자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렇게 텍스트만으로 주요한 내용을 정리해두면 스크랩해둔 콘텐츠 원본을 볼 때와는 꽤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처음 콘텐츠를 만날 때보다 감동이 줄어들 때도 물론 있지만 또 어떤 말들은 그 감동이 배가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만날 때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급적 글만으로 담백히 남겨두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07 . 마지막으로는 콘텐츠의 성격을 규정하고 분류해 보는 겁니다. 저는 동기부여 콘텐츠에는 크게 두 가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에 부스트를 달아주는 형태의 콘텐츠고 다른 하나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주는 콘텐츠라는 겁니다. 때문에 이 콘텐츠가 요즘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응원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그런 생각만 있는 건 아니란다'라며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콘텐츠인지 구분해 보는 것만으로도 콘텐츠의 활용도가 완전히 달려집니다. 저는 이 작은 행동만으로도 우리가 타인이 만들어 놓은 좋은 말들을 아주 잘 써먹을 수 있다고 봅니다.


08 . 아마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를 유심히 보다 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OOO이 하는 유튜브 보다 보니까 들은 말인데~"

"엊그제 나혼산 보다가 OOO이 하는 거 보면서 느낀 건데~"

"숏츠 보다가 OOO 선생님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말야~"

라는 말이 생각보다 우리 대화의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죠.


09 . 물론 아무런 감흥도, 생각도, 주관도, 자각도 없이 사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일이지만 결국 한 번이라도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 뭔가를 만날 때는 어떻게라도 그걸 붙잡아두고 재가공해서 흡수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그게 이렇게 차고 넘치는 명언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죠.


10 . 좀 우스운 비유이긴 하지만 저는 식당에 가서 메뉴 추천을 받을 때 '아유 저흰 다 맛있어요'라고 하시는 사장님보다는 '오늘은 특히 이게 좋습니다'라든가 '요즘엔 손님들이 이걸 제일 많이 찾으십니다'라고 말해 줄 때가 훨씬 좋습니다. 전자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소스가 없는 반면 후자는 사장님 나름대로 선택하고 편집한 작은 이유라도 있을 테니까요. 설사 그 과정을 스스로 경험한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지언정 나로 하여금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마운 법이죠.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런 사람일 때 더 매력적이 되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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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1일 오전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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